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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절이와 묵은지 / 김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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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2건 조회 3,426회 작성일 13-11-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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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겉절이와 묵은지
 

설악에 단풍이 들고 대청봉에 첫눈 소식이 오면 모든 가정이 1년 양식인 김장을 담글 준비를 해야 한다.
때가 때인지라 김치와 관련된 일련의 신문보도와 방송보도가 요 며칠간 계속 있었다. J일보가 리포트 ‘김치 손 놓은 김치의 나라’라는 타이틀로 김치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도 중국과의 힘겨운 경쟁, 국내 원재료 수급 불균형,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김치 소비 성향의 3중고로 오히려 김치수출 보다 수입이 더 많아져 김치 무역적자가 765만8000달러에 이르고 있다는 기사를 올렸다.
두 번째 관련 기사는 ‘무, 배추, 고추, 마늘, 양파 등 김장 재료로 쓰는 5대 채소류의 올해 작황이 좋아 37년 만의 대풍(大豊)을 기록할 전망으로 5대 채소류의 생산량이 모두 늘어나 농가에서 가격폭락을 우려하고 있다’라는 보도가 있었다.
세 번째 관련기사는 ‘한국의 김치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김치의 세계화에도 청신호가 켜졌으며, 또 김치 종주국 논란에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고 있다.
오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음식분야에서 발효식품인 장류와 김장문화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그 가치를 우리나라 사람 스스로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위의 리포트가 말하듯 중국에서는 발효식품인 김치를 자국의 절임식품인 ‘파오차이’ 기준을 적용하여 우리나라 김치의 수입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든 반면에, 우리는 ‘믿네. 믿지 못 하네’ 설왕설래 하면서도 오로지 값이 4분의 1수준으로 싸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김치 수입의 90%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기무치’라는 일본식 김치를 앞세워 세계시장에서 우리의 전통 김치를 아류로 만들려고 기를 쓰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먹거리이면서, 우리 민족의 건강함을 지켜 온 자랑스러운 김치를 단지 돈 때문에 이렇게 대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라고 입으로 떠들면서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이가 더 많아져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김치는 재료와 숙성기간에 따라 그 종류와 맛이 매우 다양하다. 그 중 겉절이는 앞의 절임 과정을 짧게 하여 채소 표면부분만 소금물이 침투할 수 있도록 한 후에 양념하여 채소 자체의 풍미를 즐길 수 있고, 또한 수분을 잃게 되면 그 맛을 잃어 버려 김치로 만들 수 없는 채소류들도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즉석 식품이다. 그러나 김장김치는 기본적으로 충분한 절임과정 이후에 다시 양념하여 적당한 숙성 기간을 거친 발효식품이다. 그 중 기간이 오래된 김치를 우리는 흔히 묵은지라 부른다. 그렇다! 겉절이는 겉절이대로 얕은맛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얕은맛이지, 묵은지의 오래된 풍미를 절대 따라 올 수 없다. 또한 발효된 묵은지 자체가 가지고 있는 건강학적 가치를 겉절이는 절대 가질 수가 없다.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트위터에 백악관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고 사진과 함께 조리법을 올리는 지금, 우리는 지금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자문해 볼 때다. 아이들이 먹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김치 담그기를 소홀히 하고, 김치 냉장고와 시설재배로 언제든 김치를 담글 수 있기 때문에 김장문화를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 손자들은 혹여 묵은지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진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그것은 단지 겉절이의 얕은맛과 묵은지의 오래된 풍미 같은 맛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결국 우리 문화와 삶의 질 자체를 겉절이와 묵은지의 차이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묵은지와 돼지목살이 잘 어우러진 따끈한 찌개가 먹고 싶다.
 
김종헌
시인, 문협 속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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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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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moe님의 댓글

galmoe 작성일

지부장님은 우리 고유의 먹거리 예찬론가이시지요<br />보리밥 부터 김치까지 ----김장철에 딱 어울리는 글이네요 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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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님의 댓글

김향숙 작성일

김치에 관한 부끄럽고도 안타깝고도 대단하고도 맛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br />사모님 음식솜씨가 대단하시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부러운 사실.<br />김종헌선생님의 건강은 물론, 음식에 관한 좋은 글을 쓰실 수 있도록 일조하시는 <br />사모님의 아름다운 내조에도 박수를 보냅니다.<br />올해는 백김치 담그는 일을 그만 둘까도 했는데<br />에고, 내일은 백김치 속재료 양념거리를 사러 속초시장엘 나가보아야겠습니다.<br />호두, 생밤, 잣  . . .<br />갑자기 우리 친정어머니의 백김치가 먹고싶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