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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종말이 와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듯이<권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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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춘만
댓글 7건 조회 3,018회 작성일 13-12-1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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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지구 종말이 와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듯이
발행일 : 2013.12.09 [1133호] / 2013.12.08 14:59 등록/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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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 인가 ‘내일 지구 종말이 와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다르게 해석하면 지구의 종말이 와도 꿈과 희망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즉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사과나무 심기에 비유한 스피노자의 말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지난 10월 마지막 주 남편과 함께 가평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시동생 댁에 사과를 따주려고 갔다. 파란 가을 하늘아래 나무마다 붉은 사과가 홍보석처럼 매달려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사과나무를 심은 지 사년 만에 첫 수확을 하는 날이다.
지난 6월 사과나무에 봉지를 씌워주러 갔을 때 나뭇가지가 휘어져라 매달려 있던 연둣빛 매실 같은 열매가 떨어질세라 조심스럽게 봉지를 씌웠었다. 초여름 전원 교향곡처럼 들려오던 숲 속 새소리와 소나무향기, 산 가득 봉지 쓴 사과들이 미풍에 백목련처럼 흔들리고 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봄에 이별했던 어린 열매들이 숙성한 처녀 모습으로 발그레 웃으며 반겨 주고 있지 않은가.
어렵게 자란 시동생은 결혼 후 경치 좋은 가평에서 한정식 식당을 운영을 했다. 시작 하자마자 설상가상 IMF금융위기가 와서 식당 문을 닫아야만 했다. 객지에서 속수무책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집 앞 개울 건너에 있는 오백 여 그루의 사과 밭을 임대하여 사과 농사를 지었다. 한 삼년 열심히 일하여 수확한 사과로 빚을 갚아가기 시작하자 사과밭 임대계약이 끝나던 날 펜션을 짓는다고 주인이 오백 그루 사과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다. 살길이 막막해진 시동생과 동서는 약초도 캐고 남의 궂은일도 마다않고 닥치는 대로 했지만, 은행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아이들 대학 입학금조차 없어 또 다시 낭떠러지 위에 선 듯 위기의 삶이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농협에서 영농자금을 대출받아 집에서 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백둔리 돌로 되다 시피한 산비탈을 싸게 샀다. 피나는 노력으로 밭을 일구어 비탈진 산 두 군데에 사과나무 묘목 이천 그루를 심었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산에 파이프를 설치하고 산짐승이 못 들어오게 울타리를 치고 사과마다 봉지를 씌워가며 껍질채 먹는 사과재배를 위해 사년동안 밤낮을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어린 사과나무에 별이 내려앉고 봄이면 연분홍 꽃이 피어 벌들이 잉잉거리기 시작하면 붉은 홍보석 같은 사과가 열리기를 꿈꾸며 몸이 부서질 정도로 일을 했다. 척박했던 땅이 점점 옥토로 변해 갔고 꽃이진 초여름 산비탈엔 연둣빛 물결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시동생 내외 얼굴과 팔이 구릿빛으로 변해 갔다.
힘든 삶 앞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두 내외는 사과나무를 분신처럼 생각하며 온몸으로 일을 했다. 과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큰다고 했듯이 때론 세찬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와도 한 알씩 영글어 가는 사과를 보며 고통과 희열이 교차했으리라. 그 지난했던 시간 속에서 값진 인내와 노동의 가치를 몸소 체험 했으리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눈물겨운 그들 노력에 아마 하늘도 감동했으리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듯이 오로지 맨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꿈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시동생 내외다. 다행히 금년엔 사과 꽃이 많이 피었다는 전화가 왔고 사과나무 심으며 기다린 사년 사과를 따는 날이다. 풍작이다. 남편과 나는 해종일 나무 아래서 사과를 따다가 문득 가지마다 연등처럼 매달려있던 사과를 보고 배한봉 시인의 ‘나무에게 절한다’라는 시가 생각이 나서 살짝 패러디하여 읊어보았다.
 
사과를 따본 사람은 알지요./열매의 무게로 늘어진 가지 아래로 절하며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허리와 무릎 낮추고 나무를 우러러보며 따야 한다는 것을 /부처에게 절하듯 나무에게 감사의 절을 하고 공손히 손을 내밀면/나무는 열심히 잘 익힌 열매로 그 뜻을 받아들이지요./ 이심전심 자연의 경전인 그 과일을 이웃과 나눠먹지요. / 나무에게 절하지 않고 열매를 따지 마세요./ 흙과 물과 햇볕과 바람의 기도로 꽃피고 열매 맺어 익은 사과를 따본 사람은 알지요/.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나라에 가 닿는 일인가를, 착한 손, 순한 마음으로만 가 닿을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을
수채화 같은 늦가을 풍경을 뒤로하고 억새가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들판을 지나 속초 쪽을 향해 달려오다가 선캡을 쓰고 도로변에 서서 사과를 팔다가 손 흔들어 주던 동서의 환한 미소가 자꾸만 오버랩이 되었다.
 
권정남
시인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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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만님의 댓글

김춘만 작성일

진심이 잘 표현된 좋은 수필입니다. 설악신문 (12.9일자)못 보신 분들 위해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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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님의 댓글

김향숙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br />과일나무는 손이 많이 가서 정말 키우기 힘이 들더군요.<br />우리도 좁은 터에 욕심껏 심었다가 감당이 되지 않아서 많이 베어내고 <br />지금은 꽃 보는 일로 만족하자고 복숭아나무와 포도나무, 대추나무 정도만 남기었답니다.<br />'나무에게 절한다’배한봉 시인의 시도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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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선님의 댓글

최명선 작성일

사과 파는 동서 춥다고 점퍼를 챙겨넣고 <br />갈뫼 발송작업이 끝나자마자 동동, <br />가평으로 떠나던 모습이 눈에 선해 콧날이 다 시큰합니다.<br />아플 시간도 없겠다고 내가 던진 말,진심이었답니다.<br />세상이 아무리 삭막하다 하여도 이렇게 우애로운 형제가 있는 집이 있으니<br />살아 볼만한 세상, 맞습니다.<br />건강히 돌아와서 비 오시는 오늘, <br />또 동동 사방으로 다니며 다시 갈뫼 정산에 나섰으니 참....<br /><br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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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헌님의 댓글

김종헌 작성일

발송작업과정산 작업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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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님의 댓글

김영섭 작성일

참 아름다운 비발디의 가을 선률 닮은 풍경이네요!!!<br />산 여울 물소리 바람소리 솔향 내음 어우러진 <br />땀방울이 보이네요.노고가 크신 회장님의 미소가 <br />담기어 점수는 &quot;통&quo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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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많은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글입니다 지면 관계상 많이 줄여 연결이 안됩니다. 항상 시동생 내외 사는 모습이 가슴 짠 했는데 이번 가을엔 제 마음이 환해 졌어요. 글을 쓰면서  김향숙 시인 님 '사과씨' 시를 많이 생각했어요. 원본에 그 시를 넣으려고 합니다. <br /><br /> 전화드려도 안받으시더니 아니 김영섭 시인님이 웬 일이세요? 너무 반갑네요. 홈페이지에 자주자주 들어오시고 댓글도 달아 주세요.갈뫼 행사때 직접 만나는 것 보다  더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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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재순님의 댓글

채재순 작성일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실을 맺는 시동생의 과수원 이야기 감동입니다.<br />좋은 글 읽고나니 마음이 훈훈해지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