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title03.gif

결혼 40주년 기념여행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효선
댓글 3건 조회 3,664회 작성일 14-02-07 14:41

본문

엇그제 결혼한 것 같은데 4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그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며 더우나 추우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닥쳐오는 험한 세파를 두손 꼭 잡고 주님만 의지하여 온 길을 돌아보니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멈추신 적 없이 우릴 지켜 주시고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정년 퇴직 후 속초 밥사랑공동체를 열게하시고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매 순간 체험하며 살게 해 주신 그 사랑은 감격 자체였습니다.

하나님 ~~!! 참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저희를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11월 8일(금요일) 급식을 마치고 간단한 여장을 꾸려 결혼 40주년 기념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그동안 가까우면서도 가보지 못했던 춘천으로 하고 주변 명소를 둘러 볼 작정이다.

춘천으로 들어서면서 처음 들린 곳은 김유정 문화촌이다  

김유정은 강원도 춘천에서 부친 김춘식 씨와 모친 청송 김씨 사이의 2남 6녀 중 일곱째로 출생했다. 휘문고등학교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자퇴하고, 1932년 크게 깨친 바가 있어 마음을 바로잡고 본격적인 계몽운동으로 춘천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熟)을 설립하였다. 1935년 소낙비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하였고 '금 따는 콩밭, 봄봄, 만무방, 안해, 솥, 동백꽃'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폐결핵에 시달리면서 29세에 요절하기 까지 2년 동안의 작가생활을 통해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긴 비운의 문학가다.

짧은 생의 종점을 예견한듯 타계하기 전 2년동안 집중하여 집필한 그의 열정을 느껴보고 싶은 강한 충동과 함께 김유정 문화촌의 정문을 들어섰다

정문을 들어서니 고즈녘이 앉아 우릴 기다리고 있는 김유정 선생을 만났다

그와 눈을 맞추고 책에 쓰지 못한 못다한 사연을 묻고 들으며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고 나니 한결 친근한 사이가 된듯 하였다


동백꽃 중에 닭싸움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묘사한 재밋는 조형물이 마당에 있다

"점순이는 자기집 봉당에 홀로 걸터앉아 우리 집 씨암탉을 붙들어 놓고 때리고 있었다. 점순이는 사람들이 없으면 수탉을 몰고 와서 우리 집 수탉과 싸움을 붙였다. 하루는 나도 우리 집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이고 용을 쓸 때까지 기다려서 점순네 닭과 싸움을 붙였다. 그 보람으로 우리 닭은 발톱으로 점순네 닭의 눈을 후볐다."

 

집사람과 나는 번갈아가며 점순이와 닭싸움을 걸어 보았다.

주눅이들은 유정이네 수닭은 점순이네 수닭 앞에 전의를 상실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집사람 대신 내가 대신 유정이네 닭을 붙들고 싸운을 시켜 보았지만 허사였다

닭싸움을 마치고 "봄 봄"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봉필이 와 점순이 이야기를 회자한 우스꽝스런 조형물 앞에 섰다

봉필이는 자기 딸 점순이가 키가 좀더 크면 혼인을 시켜 주겠다는 조건으로 유정이에게 공짜로 농사일을 시켰다

유정이가 3년동안 뼈빠지게 일했는데도 점순이와 혼인을 시켜주지 않아  화가난 유정이는 장인이 될 봉필이에게 왜 혼인 시켜 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봉필이가 점순이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핑게를 대고 또 미루자 유정이는 장모님은 점순이 보다 더 작은데 아이를 낳고 살았다고 항변하였는데 그 장면을 연출해 놓은 것이 아래 조형물이다.

김유정 문화관에 들려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고 밖으로 나오니 연못과 정자가 운치있는 정원으로 나와 잠시 휴식을 하고 김유정 단편집 "동백꽃" 한권을 구입하여 옆구리에 끼고 소양강으로 발길을 옮겼다

"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 노랫가락이 구성지게 울려퍼지는 소양강가에 도착하니 소양강 처녀가 우릴 반기고 서있다.

그러구보니 소양강이 크고 넓기도 하다.  인제터널을 빠져 나오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소양강 상류인데 늘 그곳을 지날때면 어김없이 소양강 처녀 노랫가락을 웅얼거렸다. 그곳에서 두시간을 달려 온 우린 아직도 소양강가에 서 있다.

소양강 처녀의 모델이 된 윤기순씨는 가수 지망생으로 1968년 18세 나이로 당시 을지로 3가에 있는 한국가요반세기 가요작가동지회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다 회장인 반야월 선생과 작사가 고명기. 류노완 월견초 선생을 고향인 소양강 상류로 초청하게 되였고 소양강 가운데 갈대숲으로 배타고 가다 갑작스런 풍랑을 만나 18살 윤기순이 쓰러지며 반야월 선생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반야월 선생은 그때 느꼈던 감정을 가다듬어 소양강 처녀의 가사를 쓰게 되였다.

소양강 처녀 가사에 작곡가 이호가 곡을 부치고 당시 가수 지망생이였던 김태희가 불러 공전의 대히트를 치게 되였다.

 

소양강 처녀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 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동백꽃 피고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달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소양강 처녀의 애절함을 뒤로 하고 집사람과 나의 관심분야인 인형극 극장과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세계 각국인형들이 참으로 호화롭다.

인형의 종류도 다양하고 공연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우리 내외는 손인형극을 하고있다.

주로 어린이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해 왔는데 관중들이 좋아하여 지금도 간간히 공연을 하고있다.

마침 손인형극 체험코너를 발견하고 집사람과 나는 번갈아 체험을 해보았다.

내가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인형극은 복화술로 하는 일인극인데 거기에 맞는 인형이 있나하고 찾아 보았지만 눈에 띄질 않아 만나보질 못했다

인형극장을 나오니 벌써 어둠이 길위로 내려 앉았다


저녁은 춘천 명물인 닭갈비를 먹기로하고 유명한 명동 닭골목으로 향하였다.

명동 닭골목에 도착하니 그 많은 닭갈비 집 중 어디에서 먹어야 좋을지 몰라 닭갈비집을 쇼핑하듯 이집저집을 기웃거리다 사람이바글바글한 명물닭갈비집으로 들어가 겨우 한자리를 차지하고 않았다.

역시 명불허전, 요즘 다이어트하느라 식사량을 조절하고 있는데 오늘 배꼽이 튀어나오게 포식을 하였다.

식사하고 나니 몸이 나른해져  예약한 춘천베어스 호텔로 향하였다.

호텔에서 단잠을 자고나니 어제의 피로는 말끔히 씻겨나갔고 새힘이 생겼다.

따듯한물로 샤워를 하고나서 체크아웃을 한 후 오늘의 일정을 정리하였다.  

오늘은 제이드 가든과 남이섬 그리고 프랑스 마을을  둘러 볼 계획이다.


제이드 가든은 남이섬 가는 길목에 있어 일정을 소화하기가 수월할 것 같았다. 제이드 가든 앞에 도착하여 콩나물 해장국집에 들어가 시원한 콩나물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제이드 가든으로 들어갔다.

제이드 가든은 숲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을 컨셉으로 조성한 유럽풍 가든으로 한화리조트에서 설립한 곳이다.

주요 관람 코스는 나무내음 길, 단풍나무 길, 숲속 바람 길로 구성되어 있고 천천히 둘러 볼려면 약 2시간 반가량 시간이 소요된다

영국식 가든과 이타리안식 가든이 있고 걷기 좋은 완만한 경사가 마음에 들었다

단풍나무 길은 늦가을이지만 아직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단풍들이 중년 신사의 중후함처럼 깊은 정취가 짓게 베어 있어 더 멋갈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 단풍 길을 우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정스레 팔장을 끼고 나무에서 떨어나온 단풍 잎을 밟으며 지나간 시간들의 추억을 떠 올리며 옛날로 돌아갔다.


1970년 늦가을 인천이 집인 집사람과 수색에 사는 내가 첫눈이 오면 비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12월 중순경 힌눈이 흩날리는데 이게 첫눈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내리는 것이였다. 비원으로 나가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 비원으로 나갔는데 집사람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비원으로 나왔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며 지었던 시 한편을 올려보자.

 

첫눈 추억

 

지천명을 
훌쩍 넘어서도
첫눈이 내리면
소년처럼 가슴은 뛰고
그녀와의 처음 약속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는다

"첫눈이 내리면
우리 무조건 
비원 앞에서 만나"

겨우내 기다리던
눈송이 몇개 나부끼는데
하도 시덥잖아
이것이 첫눈인가
아닌가
그녀도 첫눈이 오는 것을 알까

언듯 보면 눈송이
나풀거리고
또 다시 보면
희뿌연 하늘 뿐
이거 정말
그녀 마음 헤아리기 만큼 어려워

이왕 올 첫눈이면
좀 소담스럽게
펑펑 나리렴
헷갈리지 않게


1974년 11월9일 결혼식을 올리던 날. 그해 첫눈이 내렸다.

보은 속리산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감자빈대떡을 먹었는데 너무 맛이있어 더먹고 싶었지만 가진 돈이 넉넉칠 않아 되돌아 섰다. 그때부터 집사람에게 가진 고생을 다시키며 힘든 세월을 지내왔는데 불평 한 번 하지않고 따라와 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당시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이제와 뒤돌아보니 그 고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 것이다


집사람은 진작부터 머리에 내려앉은 하얀 눈발을 물 들이기를 하였는데, 나이에 비해 힌 머리가 없던 내 머리 위에도 하얀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내 머리 위에 온통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다 할지라도 젊은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고 지금의 이 행복을 즐기고 남은 삶을 하나님의 뜻을이루며 살길 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제이든 가든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두시간 가량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스펠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요즘 힐링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우리는 지금 힐링을 하고 있다.

제이든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다음 행선지인 남이섬으로 향하였다.

지난주에 자원봉사자들과 남이섬을 다녀왔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였기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던 관계로 다시 찾게 되였다.

오후 2시경쯤 남이섬에 도착하여 전기자동차를 타고 남이섬을 일주 하고 난 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추억의 흔적을 폰에 담아 두었다.


남이섬 하면 남이장군이 제일먼저 떠올려진다.

남이는 조선의 세조 재위 시절. 17세에 무과에 급제하고 나이 25세에 이시애의 란을 평정하고 또한 북방의 여진족을 물리침으로써 당세에 이름을 떨쳤다. 남이는 나이 20세에 북경을 자주침범하는 여진족을 섬멸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만들겠다는 충정으로 그 유명한 북정가를 지어 불렀고 그 시엔 국태민안을 이루려는 그의 충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 북정가를 우리 함께 읊어보자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滿江水 飮馬無  두만강 물은 말 먹여 없애리
男兒二十 未平國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한다면
後世誰稱 大丈夫  후세에 누가 나에게 대장부라 말할수 있으랴

그러나 연적이었던 유자광이 한명회를 등에 업고 남이를 모함하기 위해 북정가의 시귀 중 3행 男兒二十 未國  을 男兒二十 未國 으로 고쳐  남이가 역심을 품고 옥좌를 넘볼 자라 모함하여 역적을 만들었고 28세에 남이는 참형을 당하였다. 남이장군의 묘가 남이 섬에 있는데 허묘이고 실제 묘는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있다.

나는 남이장군 묘에서 목례로 그의 충정어린 애국의 마음에 경의를 표하였다.

남이장군 묘를 나와 한류바람의 진원지인 겨울연가 촬영지를 돌아보았다.

남이섬 관광객 80%가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사람들이 였고 그분들은 한류의 진원지인 남이섬을 관광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이 섬은 잘 다듬어진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으며 하루에 방문하는 관방객도 대단하다.

겨울연가에서 배용준과 최지우가 취했던 포즈를 취해 보지만 영 그림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였다.

오후 4시가 지나서 다음행선지인 프랑스마을로 가려 했지만 관광객들이 많아 남이섬에서 밖으로 나가는 셔틀 배를 타려면 1시간 이상이 걸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 부부가 살아 온 인생의 여정를 100세를 기준으로 한다면 70%를 산 셈이다.

그 남은 시간이 얼마이든 간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우리 부부가 꿈꾸어 온 삶의 목표가 갈수록 아름답게 채색되어

우리 주변에 소외되고 힘든 삶을 사는 분들의 친구가 되어 메마른 영혼에 예수님의 사랑을 심어드려 그 분들이 진정한 소망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 부부가 밟고 선 레일처럼 우리의 목표를 위해 주님과 함께 손잡고 부르심의 그날까지 행복하게 달려 갈 것이다.

 

댓글목록

profile_image

최명선님의 댓글

최명선 작성일

아름다운 여행!<br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br /><br />늘 이웃을 위해 애쓰시는 장로님!<br />남은 30%의 날들,<br />사모님과 함께 건강히 그리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profile_image

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1월 말 사모님께서 편찮으셨는데 좀 어 떠신지요? <br />그날 입원하신 병실에 가서 뵐려고 했는데 <br />다른일이 생겨 못가뵈었네요. <br /><br /> 늦가을 춘천 여행 멋지셨습니다. <br />바쁘신가운데 사모님 모시고 좋은데 다녀 오셨네요. <br />부부가 함께 떠난다는 것 정말 쉬우면서도 쉽지않거든요.<br />최효선 장로님 ! 결혼 사십 주년 축하드립니다. <br />좋은일 하시는 두분 오래오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profile_image

이구재님의 댓글

이구재 작성일

최장로님,결혼 40 주년 여행기 정말 감동 이었습니다. 축하드려요.<br />사모님께서 어디 편찮으신지요, 모쪼록 두 분 건강 하시어 남은 30% 여정도 주님의 은혜안에 행복하시 길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