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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움벨트(Umwelt) 이야기 / 김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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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3건 조회 2,774회 작성일 14-04-09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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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움벨트(Umwelt) 이야기
발행일 : 2014.04.07 [1149호] / 2014.04.05 13:02 등록/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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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동물행동학자 ‘야곱 폰 웩스쿨’은 <동물과 인간세계로의 산책>이라는 책에서 개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를 벨트(welt)라고 정의하고, 동물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세계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움벨트(Umwelt)라고 정의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시간, 공간,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을 그 동물이나 존재의 움벨트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 사는 산거머리의 움벨트는 ‘진동’, ‘기온의 변화’, ‘털의 밀도’ 이 세 가지뿐이다. 산거머리에게는 아프리카 밀림 속의 다양한 환경, 즉 시원한 바람, 내리는 폭우, 울창한 나뭇잎, 아름다운 꽃, 온갖 새들이 내는 다양한 울음소리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것들은 산거머리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며 인식의 대상이 아니다.
산거머리는 그저 잎의 뒷면에 붙어 기다릴 뿐이다. 자기가 서식하고 있는 나무 밑을 지나가는 뜨거운 피를 가진 동물을. 그러다 동물이 달려오고, 그 움직임에 따른 땅의 진동이 나무로 전달되면, 산거머리는 오랫동안 굶주렸던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길게 아래로 늘어뜨리고 동물이 바로 밑에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동물이 지나는 그 순간, 온혈동물의 특성상 동물의 체온 때문에 아주 미세하지만 주변의 기온이 상승한다. 그 온도 변화의 순간, 산거머리는 밑으로 낙하하여 지나가는 동물의 몸에 착륙한다. 동물의 몸에 붙은 산거머리에게 그 동물의 이름이 뭔지는 필요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어디가 빨대를 꽂기에 적당하도록 털이 가장 적은 곳이냐 하는 문제일 뿐이다.
즉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각각의 움벨트가 다르며, 다른 사물의 존재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감각세계인 움벨트를 통하여 세상을 인식하고, 그 인식의 틀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사람들도 예외일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다른 동물보다 사유의 폭이 훨씬 넓고 깊기에 오히려 그 인식의 체계가 더 다양할 것이다. 또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환경, 철학, 종교, 교육의 정도 등등 아주 수많은 요소들에 의해 변화되어지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움벨트는 오히려 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은 결코 객관적일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어떤 이를 처음 만날 때는 그리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움벨트가 다른 이와의 대화는 항상 어렵고, 자칫 잘못되면 논쟁으로 발전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 따라서 우선은 많이 듣고 관찰하여 그의 말과 행동에서 나와 같은 움벨트를 찾는다. 그것이 곧 그 사람과의 나의 앞으로 관계를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렇다. 흔히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방을 나의 세계에 받아들이는 관점은 세상에 존재 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따라서 나의 생각이 늘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바보 같은 일이다. 나는 내 주변의 어떤 이들이 사람들의 관계에 대하여 고민하고 이야기 하고자 할 때 이 움벨트 이야기를 한다. 그 결론은 늘 이렇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와 방향이 같은 사람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같이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나의 이런 생각조차 너무 좁아터진 나만의 움벨트가 되지 않을까 늘 경계한다. 내가 마치 밀림의 산거머리처럼 오로지 생존을 위한 3가지만의 움벨트를 가진 동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한 생존의 이유를 넘어 내가 살아가는 밀림 같은 세상 속에서도 때론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꽃에서 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색깔과 향기를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저녁 어스름 속에서 지는 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뜨는 해를 볼 줄 아는, 보다 더 넓고 깊은 움벨트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나는 한 편의 시를 쓰고, 또 한 권의 책을 펼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아주 많이 주관적이다.
 
김종헌
시인·문협 속초지부장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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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김종헌 지부장님이나 우리모두 밀림의 산거머리처럼 그렇게는 체질적으로 못 살지요.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분들도 더러 있더군요. 글을 쓰고 글때문에 벨트를 만들어가고 있는 '설악문우회 (갈뫼)' 그 따습고 끈끈한 벨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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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헌님의 댓글

김종헌 작성일

졸고를 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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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금희님의 댓글

노금희 작성일

늘 회장님의 수고로 신문기사를 쉽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