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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 얘들아!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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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정남
댓글 1건 조회 3,455회 작성일 15-05-0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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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 얘들아! 놀~자!
발행일 : 2015.05.06 [1202호] / 2015.05.04 13:56 등록/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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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이 쓸쓸하다. 축구골대는 저 혼자 그림자놀이를 하고, 빈 그네는 바람과 놀고 있다. 노란 봉고차들이 오전 내내 공부하느라 지친 아이들을 학원이라는 공간으로 쉴 새 없이 나르고 있다. 어쩌다 운동장에서 눈에 띄는 아이들마저도 스마트폰 게임과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놀지 못한다. 아니 노는 법조차 알지 못한다.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자.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은 시간이 없어 더 못 놀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조그만 고무공 하나로 축구를 하고, 주먹 야구를 하고 놀다가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선생님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또한 그 모든 것이 놀이터고 놀이감이었다. 나무막대 하나씩 꺾어들면 그게 칼이 되고, 총이 되었다. 동네놀이터에서 남자친구들은 계절에 따라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징어 놀이, 자치기, 말뚝 박기, 깡통 차기로 해 저무는 줄 몰랐고, 여자 친구들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사방치기, 숨바꼭질, 술래잡기 등 하루해가 짧았다. 상대에 따라 적당히 우기기도 하고, 그러다가 싸움이 나서 상대방이 화가 나서 안 논다고 삐치면 적당히 타협도 하는 법을 배웠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내가 놀이의 리더가 되어 동생들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 형들이 나타나면 얼른 꼬리를 내리고 형들의 말에 적당히 따르며 어울리는 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놀이를 통해 질서와 규칙을 배웠고, 협동과 배려를 몸으로 체득했다.
인간은 원초적으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그 놀 권리를 빼앗겼다. 혹자는 그 이유를 핵가족화에 따른 마을공동체 해체를 꼽는다. 물론 핵가족화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대한민국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교육철학 때문이다. 아니 한 발 더 들어가면 그곳에는 경쟁위주의 입시제도가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가면 대한민국의 왜곡된 취업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남의 탓을 할 것인가?
다행히 우리 강원도에서 그 변화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지난해부터 강원도교육청 민병희 교육감님이 제안하고 전국 시·도교육감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어린이 놀이헌장’의 제정이 논의되어 왔다. 그러다가 지난 4월 25일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는 세종대 컨벤션홀에서 '대한민국 어린이, 행복할 권리를 말한다'를 주제로 어린이 놀이헌장 원탁회의를 개최하여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였고, 마침내 5월 4일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어린이 놀이헌장’은 어른이 빼앗은 아이들의 놀 권리를 돌려주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누구나 차별 없이 놀이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놀이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는 놀 권리와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등 모두 11개의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이제 우리 어른들은 이 ‘어린이 놀이헌장’ 선포를 계기로 아이들에게 놀이를 돌려주어야 한다. 지나친 경쟁만을 부추기는 정답 맞추기 공부에서, 폭력을 가르치는 스마트폰 게임에서 아이들을 학교 운동장과 마을의 놀이터로 불러내야 한다. 그 자연스런 놀이공간에서 스스로 노는 법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터득하게 해야 한다. 노는 법을 모르는 아이는 자라서도 놀 줄 모른다. 다른 이들과 어울릴 줄도 모른다. 그런 아이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
진정한 놀이는 자발성이 우선되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 공부도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연구되어야 하고, 책읽기도 놀이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운동장과 놀이터가 많아져야 우리의 미래가 밝다.

김종헌
시인·속초문협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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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자님의 댓글

이은자 작성일

설악신문에서 우리 회원이 글을 실으면 꼭 읽지요.<br />김 교육장님의 글은 정말 우리들의 희망사항이고 로망입니다.<br />선생님이 꿈꾸는 교육 현장, 언젠가는 오리라 희망합니다.<br />계속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