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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언제 한 번 밥 먹자 - 김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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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미숙
댓글 0건 조회 1,278회 작성일 19-04-0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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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 언제 한 번 밥 먹자


‘언제 한 번 밥 먹자!’ 우리가 지인에게 흔히 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진심으로 하기 보다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다음에 한 번 볼 수 있으면 또 보자’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올해 초 필자는 이 말을 진심으로 해 놓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한 사람을 떠나보내고서야 때 늦은 후회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필자가 모 초등학교에 초임 교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초짜 교감인 필자에게 교무행정을 오래한 그 친구의 경험과 재빠른 일손은 그 무엇보다도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되도록 업무를 빨리 익히려고 나이스 책자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지침대로 따라 해도 늘 어디선가 막히는 데가 생겼다, 그럴 때마다 ‘00아! 여기가 왜 잘 안 돼지?’ 하고 도움을 청하면, 쪼르르 달려와 ‘여기는 이렇게 들어가서 요 배너를 클릭하고 입력창이 뜨면 이렇게 입력하시면 되요’ 라는 한 마디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해결사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학생 1200명과 교직원 70여명을 관리하는 초임교감의 역할을 큰 과오 없이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그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년이 지나 근무지가 바뀐 뒤에도 필자가 필요할 때 늘 자기 일처럼 도와주던 그 친구에 대한 고마움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근무지가 달라지고, 그 친구도 결혼, 출산, 육아로 바빠지면서 얼굴을 보는 기회가 점차 줄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치료를 받기 위해 휴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놀라서 전화를 했더니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수술과 치료도 잘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얼마 후 병원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통화를 했더니 수술도 잘 된 것 같고 경과도 좋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그 때 필자가 얼굴도 볼 겸 ‘아이들과 데리고 나와서 밥 한 번 먹자’고 했더니, 지금은 죽을 먹고 있어서 나중에 연락을 하겠다고 해서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나는 그 친구에게 약속만 했을 뿐 같이 밥을 먹지 못했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건 몇 달 후인 시월 청초호변에서 열린 속초 빛 축제 ‘청초 환희’의 축제장이었다. 필자가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호수책방 코너에서 책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선생님!’하고 부르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두 살 터울 아들 둘을 양손에 붙잡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복직한다는 소리를 듣고 매우 반가웠다. 아이들 축제장 구경을 시켜야 할 것 같아 얼른 가서 아이들 데리고 한 바퀴 돌아보라고 등을 떠밀며 말했다. ‘조만간 연락할 테니 밥 한 번 먹자!’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는 그 친구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달여 뒤 필리핀 여행길에서 같이 근무했던 현정이가 보낸 카톡을 받았다. 그 친구가 얼마 전 병세가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제 세상을 떠났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시 한편으로 미안함을 달랬다. 시를 쓰는 내내 일곱 살, 다섯 살의 두 아이가 눈에 밟혔다.

언제 한 번 밥 먹자
어제 저녁// 살아 생전/ 헤어질 때마다/ 언제 한 번 밥 먹자/ 빈말로 돌려 세웠던 그를
국화꽃 둘러싸인 사진 앞에서/ 절 두 번 하고/ 그 동안 못 먹은 밥값 대신/ 눈물밥값 조금 더 넣어 보냈습니다//
오늘 저녁// 그 동안 빈말로 돌려세웠던/ 몇 사람 불러내/ 따뜻한 돌솥밥 한 그릇/
같이 먹고 있습니다// 

 오늘 점심때도 같이 밥 먹어야 할 몇 사람과 따뜻한 돌솥밥 한 그릇 나누었다. 이제는 기약 없는 ‘언제 한 번 밥 먹자’는 소리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오늘 저녁 시간 어때? 그럼 내일 점심은?’하고 말할 생각이다. 꿈에는 내일이 있지만, 기약 없는 약속에는 내일이 없다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공부했기 때문에….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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