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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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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윤상
댓글 0건 조회 5,049회 작성일 06-02-2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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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 전성시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고) 이윤상 (112호)


  "야! 오랜만이다. 너 요즈음 어디서 무슨 일 하고 지내니?"
  "나 회사 다니고 있어."
  이렇게 응답한 사람은 어느 학교 신임 여교사였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우리나라 교육계의 큰 스승이요, 교육철학의 태두(泰斗)이며, 한때 교육부장관도 지낸 오천석 박사의 개탄(慨歎)하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교직이 일개 회사원만도 못한 직업이란 말인가? 떳떳이 "나는 교사야!"라고 과시(誇示)할 가치가 없는 직업이란 말인가? 불명예스러워서 남에게 숨겨야 할만한 일자리란 말인가?"
이 이야기는 1972년에 발간된 '스승'이라는 오 박사의 저서 머리말에서 읽은 내용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 당시 교사라는 직업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직업의 가치나 선호기준은 소득의 높고 낮음이 좌우하던 시대였다. 그때에는 내가 교직에 10년 근무했어도, 대기업이나 은행원 보수의 39% 수준이었다. 저소득의 대표직종이 교직이었으니, 여교사라는 신분을 친구에게 밝히는 것이 창피했을 것이라는 점은 그 시대 교사를 해본 사람은 이해하리라.
또 내가 초년 교사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교사 수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두 친구 중 한 사람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專門醫) 자격까지 딴 후 대도시에서 개인병원을 개업하여 잘 나가는 여의사였다. 한 사람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근무하면서 전국 '교육수기 공모'에서 당선한 교사였다. 60년대 초반 그 교사수기는 베스트셀러로 수백만 부가 팔려 인기를 끌었다.
"얘! 너는 참 행복하겠다. 날마다 맑고 밝고 싱싱한 아동들과 생활하니 얼마나 즐겁겠니? 나는 날마다 찌푸리고 울상을 지으며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들만 상대하니, 나도 아플 것만 같고, 짜증스런 날이 많단다. 네가 부럽다."
그 여의사가 여교사 친구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진심이요, 행복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 이야기다. 읽은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어쩌면 내가 교직에서 전직(轉職)을 하지 않고, 평생을 몸담고 살아온 데에는 그 책 속의 여의사가 나를 교직에 붙 잡아놓았는지도 모른다. 그 수기를 쓴 여교사는 한 달 내내 새벽밥을 먹고 만원버스에 흔들리며 통근해도, 한 달 봉급이 여의사의 하루 병원수입보다 적은 보수를 받던 시대였다. 그 여교사는 여의사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더구나 60년대 초기는 국민소득이 백 불에 머무는 빈곤의 시대였으니…….
이제는 우리가 국민소득 만불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해는 만 오천 불이요, 머지않아 이만 불시대가 도래한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늘어놓고 있으나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국민소득 100불 시대에 교직에 입문하여, 만불시대에 퇴직했으니, 소득이 100배로 증가되는 만고풍상이 요동치는 격동기(激動期)에 교직이라는 무풍지대(無風地帶)에서 살아 온 금석(今昔)의 감회가 야릇하다.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국민소득 만불시대가 되었으니, 우리 국민들은 행복을 느끼는가? 이 시대의 행복지수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가끔 이런 회의(懷疑)를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가를 만끽(滿喫)하는 직종을 선호하는 사회풍조가 여교사전성시대를 초래 한 듯하다.
정년을 앞두고 겨울방학 중간쯤에 해외여행을 떠나려고 여행사에 전화를 했더니,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는 투였다. 이미 항공사마다 비행기표가 모두 매진이라고 했다. 교사들이 몇 달 전부터 신청해서, 이미 비행기표가 고갈되었다는 즐거운 비명이었다. 특히 겨울방학 두 달은 해외여행 교사들로 초만원을 이룬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소득의 직업을 가졌다 해도 오늘날 교사들만큼 연중 4개월 가까운 휴가를 만끽할 수 있는 직종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찌 그것뿐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주 녀석이
"우리 담임(여자)선생님은 EQUS 승용차로 출퇴근을 해요."라고 귀띔해주었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10여 년 전에는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다니던 전주교육청 어떤 여 장학사가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장학사직에서 일선 학교로 좌천당했던 사례는 이제 고구려 때 이야기처럼 들리는 시대가 되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부부의사나 고소득 기업체사장이나 타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방학 때마다 해외로 골프여행을 즐기는 현대판 귀족층으로 여교사들의 신분이 급상승할 줄이야 과거에는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계급의식이 없는 교직은 꿈의 동산이다. 행정직 공무원은 9급부터 1급까지 계급의식이 엄 격하고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계선 조직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학교도 교장, 교감, 교사 3단 계의 계층이 있다고는 하지만, 교사들 집단은 완전히 수평적 구조다. 30년 경력교사나 이제 갓 임용된 교사나 똑같은 선생님으로 대우받고, 학부모들로부터 예우를 받으며, 명령 계층 라인이 거의 없다. 가뜩이나 자유를 갈망하는 현대의 젊은 여성들에게 이보다 더 자유로운 직장이 어디 있겠는가. 갈수록 교직에 대한 선호도는 높아만 갈 것이다.
우리나라 교직의 여성화는 선진국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해마다 방학 때, 나는 교육연수원 강의를 나갔다. 몇 해 전 겨울방학 때 초등 1급 정교사 자격연수를 하는데, 160명 초등교사 수강생 중에서 남자교사는 8명뿐이었다. 그런가 하면 학교 행정실장 임용후보자 연수 반의 강의를 하면서 보니, 150명중에서 15명이 남자이고 전부 여자였다. 교직만 여성이 포화 상태인 줄 알았는데, 일반 행정직도 여성이 90%를 차지하는 실정이니, 방학과 여가가 많은 교직의 여성화 비율이 세계 1위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며느리 감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이 여교사다. 요즘같이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이 빨라진 시대에 정년이 62세까지 보장되고, 높은 보수에다 한 학교에 5년까지 근속이 보장되니 이보다 더 안정된 직장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공무원은 오후 6시가 퇴근시간인데 교사는 4시 30분이면 자율퇴근이다. 개학할 무렵에 보면, 자모들이 며칠 전부터 학교에 나와 자기 자녀 교실이나 화장실 청소를 자원봉사로 해주면서, 담임선생님들을 떠받드는 모습을 보면 아주 상전 모시듯 한다. 학부모가 볼 때는 담임교사가 최고이지 교장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학교에 있을 때 보면 교장은 보고 지나치면서 인사를 안 해도, 담임 교사에게는 허리 굽혀 극진히 인사하며, 상전 중의 최상급 상전으로 예우한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여교사의 천국시대가 도래한 듯해서 흐뭇한 마음이다. 그런데도 교원노동운동이 극성을 부린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2006. 2. 20 교직의 여성화 열풍에 대한 소회(所懷)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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