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깻잎을 묶으며 /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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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깻잎을 묶으며
유홍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을 묶으며 쓴웃음을 날려보낸다
오늘도 철없는 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 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맞다 맞어,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거푸거푸 웃음을 날린다
말 안 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에 흰 구름 몇 덩이 머물다 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한나절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는, 이 얼마만의 기쁨
{실천문학}(2003.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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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향숙님의 댓글
김향숙 작성일
<blockquote style="MARGIN-RIGHT: 0px" dir="ltr">
<p>'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br />겨울이 오면 아우야 <br />흰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p></blockquote>
<p>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p>
최명선님의 댓글
최명선 작성일
<p>
영혼의 푸른 지폐!!</p><p>이 세상에서 가장 갑부일 겁니다.<br /></p>
노금희님의 댓글
노금희 작성일
<p>
들깻잎을 따면서도 현실과 희망을 적절히 버무려서 얹은 시를 만들어내는 시인의 마음이 부럽습니다</p><p>저는 들깻잎 따서 맛있게 만들어서 딸애 반찬 만들어서 보낼 생각만 했어요.ㅎㅎㅎ</p><p>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회장님!!!<br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