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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 김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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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향숙
댓글 4건 조회 1,976회 작성일 14-09-22 21:38

본문

기차 소리를 듣고



                    김용락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 기적소리가 듣고 싶다

가을비에 젖어 다소 처량하게

비극적 음색으로 나를 때리는

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방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있던

단풍이 비에 젖은 채로 이마에 달라붙는

시골 역전 싸구려 여인숙에서

낡은 카시미론 이불 밑에 발을 파묻고

밤새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던

20대의 어느 날 바로 그날 밤

양철지붕을 쉬지 않고 두들기던 바람

아, 그 바람소리와 빗줄기를 다시 안아보고 싶다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

내용조차 불분명하던 거대 담론으로

불을 밝히기라도 할양이면

다음날의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우리를 축복하던가

그날은 가고 기적을 울리며 낯선 곳을 향해

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

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빈 들판에 혼자 서서

아아 나는 오늘밤 슬픈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 시집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 (창작과비평사, 1996)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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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여님의 댓글

이진여 작성일

<p>기적소리 대신 뱃고동을 듣습니다..^&am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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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p>


한때 마음을 후러치던, 정신을 일깨우던 죽비 소리... 방황하던 그때 처럼 비오는 소리 기적 소리 가 </p><p>듣고 싶은 게지요.&nbsp; 그런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글 을 못쓰는 거지요. &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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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p>김용락시인이 어떻게 나의 20대를 이토록 기억하고 있는지....</p>
<p>정말 저 혼자서 저런 짓을 무지 하고돌아다녔다니까요.</p>
<p>그래서 내 시에 '스무 살' 이 많이 나오는지.</p>
<p>스무 살 초반? 설악산에 혼자 와서 방문 걸고 (청아산장으로 기억하는데)</p>
<p>머리 맡에 각목과 과도를 놓고 자던 일이 방금 떠로르네요. ㅋㅋ</p>
<p>엄청 객기부리고 다니던 스무 살...</p>
<p>여인숙, 담배구멍난 비닐장판, 간이역, 그 옆에 코스모스 몇 송이, 새벽에 먹는 해장국..</p>
<p>낯선 거리에서 맞는 새벽바람.....</p>
<p>모처럼 이런 철 지난 시를 만나니 지나간 시간들이 눈물나도록 그립네요.</p>
<p>이렇게 꿉꿉한 시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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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여님의 댓글

이진여 작성일

<p>정영애시인님..</p>
<p>이제 얼마 남지않은 쉰을 맘껏 즐기세요..^^</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