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벗고 들어가는 그 곳 / 황지우
페이지 정보
본문
신 벗고 들어가는 그 곳
황지우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魚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생을'쇼부'칠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 이전글찔레꽃 /유금옥 14.09.24
- 다음글가을의 유서 / 파블로 네루다 14.09.24
댓글목록
이진여님의 댓글
이진여 작성일<p>메데기 치는 생!</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