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에 걸린 편지 / 이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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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거친 봉분을 만들어준 전우들이
제 무덤에 철모를 얹고 떠나던 날
피를 먹은 바람만 흐느끼듯 흐르고 있었습니다
총성은 멎었으나
숱한 전우들과 버려지듯 묻힌 무덥가엔
가시면류관
총소리에 놀라 멎은 기차가 녹이 슬고
스러질 때까지 걷힐 줄 모르는 길고 긴 철조망
겹겹이 둘러싸인 덕분에
자유로워진 노루며 사슴들이
내 빈약한 무덥가에 한가로이 몰려오지만
어머니,
이 땅에 허리를 그렇게 묶어버리자
혈맥이라도 막힌 듯 온 몸이 싸늘해진 조국은
굳어버린 제 심장을 녹일 수 없답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피를 그렇게 마시고도
더워질 줄 모르는 이 땅의 막힌 혈관을
이제는 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식어버린 제 뼈 위에 뜨거운 흙 한 줌 덮어줄
손길을 기다리겠습니다.
무덤가에 다투어 피는 들꽃보다
더 따뜻한 손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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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p>6월입니다.</p>
<p>메르스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요..</p>
<p>또 무엇을 잊고 있는지요.</p>
<p>다음 주가 6.25입니다.</p>
<p>거친 봉분 속에 억울하게 누워있는 청춘들이 있어</p>
<p>지금, 우리가 있습니다.</p>
<p>슬프다기보다는 아픈 시입니다.</p>
<p> </p>
<p> </p>
정명숙님의 댓글
정명숙 작성일
<p>
호국보훈의 달을 상기시켜주는 철조망에 걸린 편지 잘 읽고 갑니다.</p><p>호국영령을 위해 묵념...<br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