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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골목 / 이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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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진여
댓글 1건 조회 1,687회 작성일 15-09-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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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골목 

                                이명윤


1
그 골목엔 구멍이 많다
아이들 대부분은 연탄구멍에서 나왔다
구멍 숭숭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잠자고
지갑의 구멍을 보여 주는 여자에게 구멍 난 얼굴을 하고
학교에 가면 선생들은 구멍환경조사를 한다
골목 담벼락에 구멍을 그려 놓고 킬킬 웃기도 하고
공터에서 구멍을 파고 놀며 구멍으로 세상을 보기도 한다
아이들 몸에 가득한 구멍들
구멍의 색깔은 링거액처럼 노랗다

2
간판이 기우뚱한 구멍가게에선
유통기한이 없는 구멍을 판다
와장창 밤의 고요에 구멍을 내는 골목의 남자
구멍에 악다구니를 퍼붓는 골목의 여자
눈두덩에 푸른 멍이 드는 골목의 저녁마다
구멍은 상처를 먹고 달처럼 자란다 가끔은
여러 개의 구멍을 품은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한 채 사라지는 지독한 구멍의 골목
도둑고양이 담장에 엎드려 야아옹
울음을 둥글게 마는 오후
평상에 앉아 있는 백발의 할머니에게 길을 묻는 일은
어리석다
그녀는 세상을 시청하지 않는다 두 눈이
우물처럼 비어 있으므로
구멍은 깊어질수록 점점 환해진다

3
그 골목을 지날 땐
골목의 침묵이 다치지 않게 느리게 걸어야 한다
구멍 사이로 잠자던 구멍들이, 멍들이
멍,멍,멍,
당신의 그림자를 와락 물어버릴 것이니,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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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남님의 댓글

권정남 작성일

<p>


좋은시 잘 읽었습니다.&nbsp; 연극하시랴. 낭송하시랴, 보리밥 파시랴.</p><p>많이 바쁘신데 시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