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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세상 - 이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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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영숙
댓글 3건 조회 1,335회 작성일 16-09-25 16:19

본문

벌레 세상


                                 이성선



세상은 이제

사람들의 것이 아니구나.

벌레들 땅이구나.

넓은 길 좁은 길에

큰 길 작은 길에

사람들은 사라지고

벌레가 기어간다.

벌레 벌레 벌레 벌레

벌레가 줄을 지어

색색이 다른 모습으로

기어간다. 꼬리 물고

지금은 잠실에만

누에가 사는 게 아니다.

모든 도시가 다 잠실이고

길은 벌레의 길이다.

설악산이 큰 뽕밭인 줄 알고

누에들이 달려간다.

가야산 속리산 토함산으로

송충이들이 떼지어 몰려간다.

산으로 바다로 한없이 이어진

작고 아름다운 무당벌레 행렬.

뽐내며 뒤우뚱거리는 쇠똥벌레.

느릿느릿 기어가는 팥망아지.

길에서 사람은 사라졌구나.

사람들은 모두

벌레 속으로 숨어들어가

벌레가 되었구나.

벌레 세상 벌레 천하

벌레들이 엉키어

길 위에 넘어진다.

이마 부서지고 배 터지고

몸이 으서지며

서로 부딪쳐 싸운다.

벌레들은 모두 달려간다.

산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바다를 똥밭으로 만든다.

벌레 세상 벌레 천하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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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숙님의 댓글

조영숙 작성일

<p>


인간미의 기준은 무엇일까요...?</p><p>이 별에 사는 모든 목숨에게 합당한 기준일까 하는 생각 들어서요.</p><p>생각 깊어지라고 가을비 내립니다.<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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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숙님의 댓글

조영숙 작성일

<p>


1991년, 시인은 2016년의 대한민국을 예견한 것일까.</p><p>'사람들은 사라지고' 일베충과 메갈충들이, 맘충과 한남충들이 '서로 부딪쳐 싸우'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을...</p><p>'벌레 세상 벌레 천하'에 가을이 당도했다.<br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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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자님의 댓글

이은자 작성일

<p>영숙님</p>
<p>문학포럼 행사장에 가던 길에서 내게 들려주던 시를 올려주었구려.</p>
<p>신문이나 영상매스콤만 본다면 우리가사는 이 지구에서 이간이 곧 다 사라지고 말것같소. 마는 </p>
<p>가만히 둘러보면 벌레보단 인간미를 입은 인간의 수가 아직 한없이 많은 것이 위로가 되더이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