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title02.gif

조치원을 지나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권정남
댓글 0건 조회 1,638회 작성일 02-01-22 10:03

본문

조치원을 지나며
송유자

밤열차는 지금 조치원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조치원이 어딘가, 수첩 속의 지도를 펼쳐보니
지도 속의 도계와 시계, 함부로 그어 내린 경계선이
조치원을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둬놓고 있다.
나는 문득 등짝을 후려치던 채찍 자국을 지고
평생을 떠돌던 당속으로 들어가서
한 점 흙이 되어 누운 대동여지도 고산자를 생각한다.
새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사나이, 그가
살아서 굼꾼 지도 속의 세상과
죽어서 꿈꾼 지도 밖의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몇 달째 가뭄 끝에 지금은 밤비가 내리고
논바닥처럼 갈라진 모든 경계선을 홡으며
비에 젖은 풀잎들이 스적스적 일어서고
나는 불우했던 한 사내의 비애와
상처를 품고 앓아 누운 땅들을 생각한다.
대숲이나 참억새의 군락처럼, 그어질때마다 거듭
지워지며 출렁이는 경계선을 생각한다.
납탄처럼 조치원역에 박힌 열차는 지금
빗물에 말갛게 씻긴
새울음 소리를 듣고 있는 중이다.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작품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