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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리랑의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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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현정
댓글 0건 조회 2,902회 작성일 06-01-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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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정/선/아/리/랑/흔/적/을/찾/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오진 황현정 作



  누구의 마음으로부터 발생해 누구의 입으로 불려지다가 오늘에 이르렀는지 종적을 찾기 힘든 민중의 노래가 흐르는 곳 가운데 한 곳, 강원도 정선 아오라지가 마음을 끌고 있다. 북한 땅과 남한 땅이 하나였을 당시의 문화적 흔적이 비교적 생생히 남아 있는 곳엔 아직 아리랑 고개를 넘나드는 한민족의 얼이 초로 인생을 위로하고 있다. 우여곡절 많은 좁은 땅의 설움을 고스란히 표현하듯 아리랑의 가사는 시대별로 약간씩 다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귀에 익숙한 가사를 제외하곤 생각한 것 이상으로 긴 가사를 자랑하는 아라리가 불공평한 인생을 비꼬기도 하며, 깊숙한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분통을 절제감 높은 기법으로 토해낸다.

아우라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따라붙는 수식어가 뗏목이다.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 징검다리로도 건널 수 없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돛대와 삿대도 없이 남루한 몸을 인생에게 내맡긴다. 아이들이 멱을 감기 위해 어른 키의 두 배쯤은 되는 바위 위에서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배우던 시절은 추억으로만  머물 정도로 오늘날엔 물이 메말라 늙은 어미의 젖가슴 같은 몰골을 하고 있으며 군더더기처럼 시커먼 돌무더기가 여행객을 반긴다. 아쉬움과 씁쓸함으로 끊임없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지역엔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처럼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가 전설의 강물로 흐르고 있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로 넘어가네

뗏목을 타고서 술잔을 드니

만단의 서름이 다 풀어지네  


하지만 술잔으로 풀 수 있는 사랑 이야기는 결단코 아니다. 남몰래 사랑을 나누던 남녀는 밝혀지지 않은 이별의 뒷이야기를 남겨두고 헤어져야만 했으니까. 쾌락을 위해 놀다가는 그런 가벼운 노래가 아니다. 수심편/산수편/애정편/조혼편/처세편/모녀편/부부편/상사편/이별편/무상편/의 노랫가락을 듣고 있노라면 막힌 굴뚝이 시원스레 뚫려나가는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슬픔에 젖어 울음 우는 소쩍새가 되기도 하며, 덩더쿵 덩더쿵 흥겨운 어깨춤을 추는 취객으로 변화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지금쯤은 눈꽃으로 고갯길 넘는 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강원도 정선 지장천에는 전장에서 쓰러져 넋이 된 영혼들의 무덤처럼 환경 오염의 후유증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함백산으로부터 흐르던 푸른 물줄기가 폐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나을 수 있는 몸살이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꽁꽁 얼어붙어 살얼음 건너게 했던 동장군의 심술 따윈 감히 심술이라 할 수 없는 자연의 파괴가 아오라지를 아끼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끓이고 있다. 하지만 정선역 플랫폼 기차 경적소리가 아담한 정선 5일장으로 울려 퍼지면 아리랑 노랫가락은 또다시 활기를 찾는다.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리꾼들의 아리랑 애착은 정선 아리랑의 본거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시장 구석진 가장자리에서 팔리고 있는 붕어빵을 어색하지 않게 오물거리며 맛을 음미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잘 익은 찰옥수수와 검정 비닐봉투에 담겨지는 갖가지 먹거리가 분주히 주고받는 지폐의 바스락거림같이 구수하다. 고물상을 떠오르게 하는 좌판에는 옛 어르신들이 즐겨 신던 고무신, 아궁이를 덮이던 풀무, 어둠을 밝히던 낡은 등잔불, 탑의 모형, 나막신, 화롯불 등이 향수를 느끼고자 찾는 이들의 마음을 충족시키고 있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지장천처럼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정선 5일장이 활기를 되찾은 계기는 그 지역 일대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면서부터이다. 살고 있는 고장 자체가 상품이 되어 주민들의 소득을 올리는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신뢰감을 표현하기 위해 명찰을 착용하며 신토불이 먹거리를 파는 재래시장상인들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그득하다. 사계절을 담고 있는 산나물의 향기는 문명이 닿지 않은 깊숙한 골짜기의 순수와 정결을 건넨다. 곤드레나물, 취나물 등을 양념하지 않은 자연 상태로 입에 넣어 향을 즐기는 여행객의 칭찬은 마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장에라도 아픈 곳을 낳게 할 효험이 있어 보이는 한약 재료상에는 외국의 제품을 찾을 수 없이 국산약재들이 즐비하다. 장터를 쭉 둘러본 후 시장기가 돌면, 콧등치기(메밀국수)나 올챙이를 닮아 이름지어진 올챙이 국수로 허기진 배를 즐겁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장터에 왜 서글픔이 밀려드는가? 주름뿐인 늙은 몸에서 눈물로 불려지는 아리랑 한 곡조는 지나간 삶의 회고록이다. 쉴 사이 없이 개방되고 있는 외래 문화 속에서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를 지닌 사람들의 각고의 노력이 정선아리랑연구소/정선아리랑학교/정선아리랑전수관/ 건립의 성과를 이루었다. 자료실과 공연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수관동에서 바라다보는 아오라지는 흡사 신혼부부의 단꿈이 서려있는 신혼 여행지에 견주어도 좋게 멋진 공간적 여유를 제공한다. 정선아리랑 연구소는 구전되어 오던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회보를 비롯한 신문자료집 발간에 노력을 기울이며, 정선아리랑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가 하면, 정선아리랑 학교를 무상 임대하며,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아리랑 알리기에 부단히 힘쓰고 있다.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에 위치한 정선함백초등학교 매화분교장을 잊지 말고 찾도록 해보자. 그곳에 가면 전통문화 지킴이들의 땀방울이 아직도 이슬처럼 맺혀있다.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 산(山)인들 제대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겠는가. 정선의 벌거숭이산(민둥산) 역시 마찬가지다. 민족혼의 노래 아리랑의 한 뿌리인 정선아리랑 고갯길에 외세 침략 앞에 허리 굽히지 않았던 민족성을 반영하듯 억새가 곳곳마다 자리를 차지했다. 가을철에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세계로 올라온 듯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몽롱함에 빠져들게 하는 억새 밭이 명창의 목청을 힘껏 돋운다. 겨울이면 빈틈없이 내린 눈으로 벌거숭이산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교차하고 있다. 오르고 내리기 쉽지 않은 벌거숭이산에는 등성이마다 메아리 된 아리랑 가락이 울부짖는다. 힘겨운 등산을 마쳤으면 쉼터로 향해보자. 임계면 봉산 3리에 위치한 구미정은 아직도 선비들의 글 익은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구미정은 조선 숙종 때 공조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거생활을 하신 곳이며 9가지의 자연의 신비로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어찌 이렇듯 황홀한 자연 속에서 글과 노래가 나오지 않으리요. 9가지 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9가지 美 :   어량, 전주, 반서, 층대, 평암, 등담, 취벽, 열수, 석지
           - 어량 : 폭포에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 위에 삿갓(통발)을
                   놓아 잡는 경치
           - 전주 : 밭두둑 (전원경치)
           - 반서 : 넓고 평평하게 된 큰 돌
           - 층대 : 층층이 된 절벽
           - 석지 : 구미정 뒤 편 반석 위에 생긴 작은 연못의 경치
           - 평암 : 넓고 큰 바위
           - 등담 : 정자에 등불을 밝혀 연못에 비치는 경치
           - 취벽 : 구미정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경치
           - 열수 : 구미정 주변 암벽에 줄지어 있듯이 뚫려 있는 바위구멍의 아름다움

          

다시금 아오라지의 외로움을 찾아보았다. 아오라지의 뜻은 '어우러진다'는 뜻이다. 사랑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오갈 수 없는 먼발치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동안 속으로 삭였을 슬픔과 고통의 그림자가 떠나지 못하고 있다. 분명 어느 커플보다도 훨씬 잘 어울렸을 커플이었을 텐데. 어울림을 어울림으로 완성하지 못한 슬픔과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나룻배 한 척이 수풀의 소스라치는 소리 죽인 외침에 귀기울이고 있다. 둘이서 하나이어야 할 인연이 하나되지 못하고 흩어진 비극이 흐르고 있다. 아오라지에 마음을 빼앗기고 소홀히 넘기기 아쉬워 관련 자료를 뒤적거려보았다.


아오라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기 위해 정선군 북면사무소 자료실로 눈길을 돌렸다. 아오라지는 북면 여량리에 위치해 있으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정선아리랑의 대표적인 발상지 중의 한 곳으로서, 예부터 강과 산이 수려하고 평창군 도암면에서 발원되어 흐르고 있는 구절 쪽의 송천과 삼척군 하장면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있는  임계 쪽의 골지천이 합류되어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 불리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적인 배경에서 송천을 양수, 골지천을 음수라 칭하여 여름 장마 때 양수가 많으면 대홍수가 예상되고, 음수가 많으면 장마가 끊긴다는 옛말이 전해오고 있다. 정선읍으로부터 19.4km 거리에 위치한 아우라지는 산수가 아름다운 여량8경의 한 곳으로 송천과 골지천이 이곳에서 합류되어 한데 어우러진다 하여 '아우라지'라 불리고 있다. 이곳은 주위에 노추산, 상원산, 옥갑산, 고양산, 반론산, 왕재산 등이 둘러싸여 땅이 비옥하고 물이 맑아서 예부터 풍요로움과 풍류를 즐기던 문화의 고장이다. 오래 전 남한강 상류인 아우라지에서 물길 따라 목재를 한양으로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 터로 각지에서 모여든 뱃사공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던 곳으로 정선아리랑의 가사유래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뗏목과 행상을 위하여 객지로 떠난 님을 애달프게 기다리는 남녀의 애절한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지금의 정선아리랑 가사로 남아 널리 불려지고 있다.(정보제공 : 정선군 북면사무소 총무팀의 자료)


  이재형님의 자료에 의하면, 지금까지 정선아리랑 가사는 1,500여수가 채집되었으며 정선아리랑 창 기능보유자 3명, 교육보조자 3명, 전수장학생 6명을 지정하여 전수활동에 노력하고 있다. 정선아리랑을 원하는 일반인은 정선아라리전수회 (0398-562-5587)에서 제작한 녹음테이프를 구입하시거나 매주 수요일 오후2시 군청 옆 문화예술회관(0398-560-2566)에서 개최되는 정선아리랑 전수교실에 참여하시면 기능인들의 창도 듣고 같이 부를 수 있다. 정선군에서는 정선아리랑을 전승보전 하기 위해 매년 10월 초순 정선아리랑제 (문화행사 "정선아리랑제" 참조)를 개최하고 있으며, 정선읍 뒤쪽의 비봉산 중턱에는 정선아리랑비(1977년 건립)를 세웠다.  (정보제공 : 이재형 님의 홈페이지 / 민족혼 아리랑을 찾아서)



아리랑을 부르노라면 웬일인지 울밑에 선 봉선화라는 노래가 뒤따라 흥얼거려진다. 곡조와 가사는 다르지만 억눌린 민족의 울분을 숨길 수 없어 그런가. 양지 뜰에 나서지 못하고 울 밑 그늘아래서 조국을 잃은 봉선화가 부르는 아리랑! 두뇌를 흔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시리다. 우리 민족 뿐 아니라 해외 동포를 비롯한 외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리랑! 뜻을 알고 부르든 생각 없는 앵무새의 흉내이든 입에서 입으로 불려지는 아리랑의 흐름은 지역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있다. 살다가 메말라버린 눈물처럼 가물어 가는 아오라지의 강물이 다시 원상태를 회복하면 오죽이나 좋을까. 서민의 삶을 노래한 아리랑이 네트워크를 통해 울려 퍼지고 세계 무대를 장식할 때, 더 이상 슬픔과 회한이 아닌, 자랑스런 자부심의 노래가 될 수 있도록 전통문화 지킴이들의 노력은 지속되어야한다. 우리 겨레만이 보유하고 있는 한민족의 문화를 문화의 장벽 너머로 과감히 넘겨보자.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그릇된 삶을 어딘가에 내던져버리고 쉽게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레방아 돌던 물이 되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듯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흘러가는 삶의 강물이 된 서글픈 인생아! 비탈길처럼 굴곡 많은 삶을 끌어안고 죽으나 사나 주어진 인생을 거부 못하고 살아가는 연약한 인생의 애간장이 녹는 솔직한 심경을 쏟아낸다. 치맛자락을 쓸어 올리며 곱게 땋은 머리, 슬프도록 어딘가를 응시하는 아오라지 처녀상이 님 오실 날을 기다리며 흘린 눈물의 강물로 줄 배 한 척 무심히 떠나고, 들짐승과 산새마저 꼬리를 감춘 나루터엔 바람이 들려주는 아리랑이 벗이 되어 머문다.

* galmo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6-2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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