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_title02.gif

내가 원하는 친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병규
댓글 2건 조회 2,624회 작성일 06-01-26 23:07

본문

내가 원하는 친구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고) 김병규


친구라는 의미가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어디에 기준을 두어 진실한 친구라 할지 회의를 느낄 때도 있다.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어온 비슷한 연배를 친구라 하고 싶지만, 각자 개성이 있고 사고방식이 달라서 아무개가 내 친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프거나 어려울 때, 함께 나누어 가벼이 할 수 있는 친구라면 진실한 친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친구를 갖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착하고 의롭게 사는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진실한 친구가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 친구가 그렇게 진실한 사이더냐?"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
"그러면 네 친구와 내 친구 중에, 누가 더 진실한 친군지 견주어보자." 부자는 약속을 하고, 돼지를 잡아 사람의 시체처럼 꾸몄다. 한 밤에 그 가짜 시신을 짊어지고 아들 친구의 집으로 갔다. 아들 친구는 맨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친구야 사실은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 그 시체를 나 홀로 처리하기 어려워서 왔으니 이 밤에 흔적 없이 암매장하도록 나를 도와주게."하며 간청을 했다. 아들 친구는 깜짝 놀라며
"그렇다면 관가에 가서 자수할 일이지 나까지 죄인 만들려느냐?"며 안면을 바꾸었다. 그 길로 가짜 시신을 짊어지고 아버지 친구 집으로 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버지 친구는
"아! 그런가? 어서 들어오게. 이 밤중에 감쪽같이 암매장하면 누가 알겠는가?"라면서 괭이와 삽을 챙기며 서둘더란다.

이 이야기는, "세상을 살면서 생사를 같이할 진실한 친구 세 사람이 있어야 한다."며 나의 아버지께서 주문처럼 하시던 말씀이다.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이와 같이 생사를 같이할 사람이 진실한 친구라고 나는 믿어왔다. 그 후 철이 들면서 진리와 같던 그 말씀에 회의를 느꼈다. 사회 구조가 단순했고, 의리와 인륜도덕이 우선하던 아버지 시대에는 인정할 수 있었겠지만, 사회질서가 우선되어야할 현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범죄예방 차원에서라도 고의거나 과실일지라도 살인자는 처벌하여 범행을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친구의 의리보다 우선하리라 믿는다.

내가 열네 살 때 6.25전쟁이 났었다. 반동으로 몰린 나의 큰형님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9.28수복으로 공산당이 물러가던 추석 전날 밤 감방에 있던 사람들이 살벌한 가운데 트럭에 태워지고 있었다. 형님도 묶인 채 승차하려던 순간 "김인규는 아니야!"라면서 단도로 포승줄을 끊고 밀어내어 차에 오르지 못하게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호송책임자였고 형님의 친구 H였다. 당시 실려간 사람들은 모두 학살당했는데 형님은 친구의 덕에 살아남았다. H는 공산당에 부역하며 꽤나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학살 대상자를 방면할 권한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살벌한 가운데 자기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죽음의 문턱에서 친구를 구해준 의리의 사나이였다. 수복이 되어 면사무소의 병사계장으로 일하던 형님은 친구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서둘렀다. 잡히면 사형대상인 친구와 은밀히 연락이 되어 국군에 보내게 되었다. H는 군 생활도 모범적으로 하여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오늘까지도 두 분은 서로가 아끼고 존중하며 의리 있는 노년을 보내고 있다. 두 분의 삶에서 진실한 친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다. 형편과 처지가 비슷하고 사고방식이 같은 사람끼리 친한 사이가 된다. 의롭게 살면서 친구와 의리를 지키는 사람, 자기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곤경에 있는 친구를 돕는 사람,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변함 없이 따뜻한 정으로 친구의 관계를 지키는 사람이면 진실한 친구가 아닐까? 그런 진실한 친구를 얻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친구를 위하여 어떤 희생이라도 감내하는 마음을 지녀야 하리라 믿는다. 내가 먼저 곤경에 처한 친구를 구하는 정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친구를 사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친구와 의리를 지키는 일이 더 중하다. 나의 진실을 먼저 보여주고 허물없는 친구간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 약점을 덮어 개선하도록 권고하여 기회를 주는 것이 의리 있는 친구의 도리라 믿는다.

내가 원하는 친구는, 만약에 내가 곤경에 빠졌을 때, 자기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해 주려는 담력 큰 친구는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바른 일은 긍정하고, 그른 일은 부정하는 결단력 있는 친구를 원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눈에서 슬픈 눈물을 흐르게 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의 가진 것을 서슴없이 베풀 줄 아는 사람이면 더욱 친구로 삼고싶다. 나의 약점을 지적하여 개선의 기회를 주고, 흐르는 물처럼 서로의 가슴에 정이 흐르게 하는 사람이면 나는 진실한 나의 친구로 삼고싶다.
             (2006. 01. 20)

* galmo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6-24 20:13)
* galmoe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6-24 20:25)

댓글목록

profile_image

박명자님의 댓글

박명자 작성일

  진실한 친구<br />
 요즘 세상에는 친구도 이해 관계로 이루어져 정말 살맛을 잃게 합니다.<br />
 가끔 아름다운 우정을 보면  세상은 아직 실 만 하구나.느껴 집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_image

신민걸님의 댓글

신민걸 작성일

  이기주의의 이타화? 이타주의의 이기화?<br />
친구, 마냥 그립고 좋은 대상이지요...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