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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빨랐지 그 양반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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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국화
댓글 5건 조회 1,495회 작성일 14-02-2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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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빨랐지 그 양반

                                  이 정 록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 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라니까 그러더니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번갯불에 도롱이 말릴 양반이었지 겨우 이름 석자 물어본 게 단데 말이여

그래서 저 남자가 날 퇴짜 놓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뱃살이며 가슴이 출렁출렁하데

처녀적에도 내가 좀 푸짐했거든 월산 뒷덜미로 몰고 가더니 밀밭에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더라고 자갈길에 젖가슴이 치근대니까

피가 쏠렸던가봐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얼굴을 덮더라고

 

그 순간 이게 이녁의 운명이구나 싶었지 부끄러워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정말 빠르더라고 외마디 비명 한 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풀물 핏물 찍어내며 훌쩍거리고 있으니까

먼 산에다 대고 그러는 거여 시집가려고 나온 거 아녔냐고 눈물 닦고 훔쳐보니까

불한당 같은 불곰 한 마리가 밀이삭만 씹고 있더라니까

 

내 인생을 통째로 넘어뜨린 그 어마어마한 역사가 한순간에 끝장나다니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진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윗바퀴가 하늘을 향해

따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적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1년 11월~12월 호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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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애님의 댓글

정영애 작성일

<p>


갑자기 꽃무늬 분홍치마와 흰색 카바양말에 빼딱구두 신고</p><p>월산 뒷덜미로 올라가고 싶은 이 충동~~~^^</p><p>누가 나 좀 말려줘요.&nbsp;</p><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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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자님의 댓글

박명자 작성일

<p>


참 빨랐지? 그 양반///&nbsp;&nbsp;&nbsp;&nbsp; 이 이야기는 전라도 사투리로 해야 제격이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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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님의 댓글

김향숙 작성일

<p>정영애시인의 현란한 퍼포먼스가&nbsp;눈에 선합니다.</p>
<p>이 시는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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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숙님의 댓글

서미숙 작성일

<p>ㅋ~ 이곳에 와보니 많은 글들이 있네요.</p>
<p>&nbsp;글이&nbsp; 실감나고 재미있습니다. </p>
<p>쪼금&nbsp;&nbsp;거시기 하기도 하지만요.</p>
<p>갑자기 요즘 정말 시 공부 하고 싶어져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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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님의 댓글

정명숙 작성일

<p>


이야기 시의 묘미를 흠뻑 느끼고 갑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