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호2017년 [시] 쑥개피떡 외 2편 / 이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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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엔 꽃몸살 앓고
여름은 더위에 몸 사리고
아, 가을되어 정신 차려 보니
쇠약해진 몸과 마음
이 나이 첨 맞이하니 연습도 없이
고령의 길에 섰다
여기저기 망가져 가는데
감성인들 무뎌지지 않을리 없겠지
부디 메디컬리제이션(medicalization)*은 되지 말자.
*초기 고령화에서 흔히 나타는 - 의사 의존형 -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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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개피떡
사월 어느 조용한 날
장거리를 걷다가
떡집 진열대에 올라앉은
쑥개피떡을 만났다
엄마의 색깔이다
엄마의 냄새다
따뜻한 추억과
향긋한 기억의 쑥개피떡을 사 들고
집에 오는 길이 환하다
삶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그리움이 쑥향기로 피어난다
부지런하시고 조용하신 분
햇쑥 나는 이맘 때면
쑥개피떡을 해 주셨지
엄마의 사랑이었던
추억과 기억을 접시에 올리고
사랑해요, 감사해요.
다시 한번 읊조렸다
달큰하고 쫄깃한 추억을 씹는다
촘촘히 스며오는 사랑 내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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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건한 가을 장터
어느덧 독거노인이 된 몸
적막을 걸친 채
장거리에 나갔다
바람에 실려 오는 가을 냄새
왁자한 사람의 냄새
사람들의 입성도 달라졌다
소매는 길어지고
낙엽빛이 걸어 다닌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수북한 가을
참 잘 익은 시가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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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 핀 옥잠화
맑은 햇살이
노닐다 간 초저녁
찬 바람
여름 끝을 지나간 자리
초록이 지쳐
누렇게 앓고 있는데
옥잠화 한 송이 시리게 피었다
어쩔라고 뒤늦게
꽃문 활짝 열었는가
어쩌자고 향기는 찰랑이는가
네가 꽃이라 해도
봐 줄 이
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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