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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2년 [수필-이은자] 어머니와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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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68회 작성일 05-03-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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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호박

호박 한 개를 주웠다.
태풍 루사가 쓸고 가버린 끝자락 청초호 공원을 걷다가.
공원은 온통 껄죽한 진창으로 덮혀 있었다. 속초로 여행온 벗들에게 자
랑을 하며 보여 주었던 곳이라곤 인정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청초호 공원은 새들을 위해 솟대가 있고 그네들을 잘 볼 수 있는 망대
도 있다. 규모는 작지만 갈 숲도 있다. 소야 천과 맞닿은 곳엔 철따라 크고
작은 새들이 먹이를 얻고 날개를 말리고 휴식을 취하며 삶에 쫓기는 사람
들에게 위안을 준다. 호수 주변은 해국을 비롯해 여러 가지 야생화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잔디밭 사이로 오솔길 도 좋고, 맨발로 걸으면 기분 좋은 강
변 돌길. 통나무 단면 길도 있다. 분수대 주위엔 자전거길, 롤러보드도 있
다. 앉아서 쉬는 사람보다 그 모습을 보면 더 멋있는 벤치도 있다.
속초 시민들이 몇 년을 두고 가꾸어 놓은 공원이건만 루사는 하룻밤에
다 엎어 버리고 갔다. 자연의 힘 앞에 사람들은 이다지도 무력한 것이다.
어느 집 아낙이 애지중지 여겼을 가재도구며 가전제품들이 뿌리채 뽑
힌 나무 등걸이에 뒤엉켜 나뒹구는 것이 마치 시체들을 보는 것 같아 처참
하게 느껴졌다.
하늘은 간밤에 있었던 폭우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군데군

데 고여 있는 물웅덩이만이 미풍과 햇살에 잔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연극
무대에서 장면을 순식간에 바꿀 때 회전 무대를 이용한다. 하룻밤 사이에
이 고장은 그렇게 바뀐 것이다. 더는 발을 옮겨 디딜 자리를 못 찾아 망연
히 서 있다가 저만치에 덩그렇게 멈추어 서 있는 공 같은 것을 발견 했다.
공일까 싶어 다가서서 건드려 보았다. 진흙으로 매질해 놓은 호박이었다.
꼭지 끝에 한 뼘 남짓 줄기가 붙어 있고 깨진 데는 없어 보였다.
척산골에서 아님 청대리에서 였을까 간밤의 그 무서운 소용돌이 속에
서 어떻게…….
웅덩이 물로 들고 가서 어루만지듯 진흙을 닦아 주었다. 짙은 황갈색
윤기를 내 보이는 호박 몸엔 패인 자국은커녕 긁힌 자국하나 없이 말짱했
다. 살아 있어 준 것에 고마움과 상처하나 없음에 놀라웠다. 어느 부지런
한 농부가 씨 할려고 아끼고 때를 기다리던 호박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고
향집에 홀로 사는 늙은 에미가 울바재에 키워서 먼 데 사는 자식 주려고
아껴둔 것 일지도 모른다.
내 어머니의 그 호박들처럼.
남의 물건을 주우면 주인를 찾아 주어야 옳은 일이건만. 이 엄청난 천
재지면 속에서 잃어진 사람조차 미쳐 챙기지 못하는 형편에 누구에게 호
박 한 개를 말한단 말인가.
잘 익어서 보기보다 가벼운 그 호박을 안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
집 쌀 뒤주위에 내 어머니 호박 자리에 종이로 또아리를 틀고 올려 놓았
다.
우리 어머니는 자식이 일곱이지만 다들 먼 데나가 살고 속초에 혼자 남
아 살았다. 해마다 가을 걷이를 끝내고는 잘 익은 호박 하나를 서울에 살
던 내게 보내셨다.
나는 그 호박을 뒤주위에 놓아두면 긴 겨울이 따스했다. 어머니와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어머니의 호박은 당신의 마음이었고 그리움이였음을 나는 안다. 멀게
는 당신의 친정이고 가깝게는 당신의 자식들이다.

6. 25사변 중 그 가을에 어머니는 나와 내 아우를 데리고 잠시 친정에
다녀오셨다. 그리고 다시는 못 가셨다. 전쟁은 끝났어도 휴전선 너머에 있
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친정집은 농사 집이다. 기차에서 내려서도 고개 하나를 더 넘
고 강을 건너야 했다. 우마차로 가지 않으려면 그렇게 가야 지름길이란다.
강가에 닿으면 어머니는 동생을 먼저 건네 놓고 나를 업어 건네신다. 무릎
정도 차는 물이지만 물살은 매우 세찼다.
갈 적엔 내 옷매무새를 고치시며 어른들께 인사하는 법을 재삼 당부하
셨고, 돌아올 때는 강을 다 건네 놓고서도 마을 쪽을 강변에 주저앉아, 바
라보며 서럽게 우셨다. 늘 그러시기에 나는 별로 조르지 않고 고무신으로
물새우를 뜨면서 당신을 훔쳐보았다. 아이들 입술이 파래지면 어머니는
흠칠 놀라서 주섬주섬 길을 재촉하셨다.
외갓집엔 곳간마다 곡식이 가득했지만 내가 가장 탐냈던 것은 골방에
있던 호박들이었다. 세층이나 되는 시렁에 빼곡히 앉아 있는 호박들은 모
양도 가지가지 색깔도 가지가지였다. 외삼촌은 그 골방에서 나를 무등을
태워,가지고 싶은 것을 손가락으로 짚으라 했다. 두세 개 만 하라는 어머
니의 당부 말은 그 골방에 들어가면, 삼촌이 부추기면 여지없이 사라진다.
족히 여남은 개는 찍어 놓는다.
첫 눈이 올 때쯤이면 외갓집에서 부친 수화물이 우마차 하나 가득 우리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그 중에 제일 예쁜 호박 하나를 골라서 아버지 서가에 놓아
두셨다. 가솔이 많던 당시의 우리 집에서는 단 호박은 쪄 먹고 늙은 호박
은 죽 쑤어 먹었다. 봄까지 서가에 있어서 밑둥이부터 진물러 버리는 그
호박처럼 나의 쌀 뒤주위에 호박도 늘 그리 되었다. 속 모르는 식구들의
비난을 받으며.
팔순 넘게 사신 어머니는 말년에 맏딸인 내 집에 자주 와 계셨다. 어머
니가 오시면 사흘 밤은 새야 한다. 다른 자식들은 그 때 너무 어려서 모르
지만 어머니의 옛 이야기 즉 친정과 시집살이를 알아 들어주는 자식이 너

하나뿐이시라며 일인다역(一人多役)의 후일담을 펼치셨다. 어느 대목에선
신명을 내고 어느 대목에선 서러워하며 지난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야
기지만 무엇이건 다 들어주는 게 대접이라 여기고 간간이 주(註)를 달며
나도 맞장구를 쳤다. 이야기가 외갓집 호박에 이르르면 어머니는 당신의
소녀시절까지 말하며 꿈을 꾸시는 것 같았다.
삼 년전 초겨울 아침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금년 봄에 어
머니께서 안계신 친정 동네로 이사 왔다. 고향에 와서도 고향이 그립다면
말이나 되는가.
내가 그리워한 고향은 어머니였음을 이제사 알았다.
날이 추워지니니 이 호박 주인의 형편이 자꾸만 궁금하다. 수해는 어
느 만큼이나 입었는지 겨울을 지낼 만치 방은 따스한지. 양식은 대충 거두
어 놓았는지.
당신의 호박이 이렇게 무사하고 쓸쓸한 내게 겨우내 따스함이 되고 있
을 것이라 전할 길이 없다.
내가 아무리 내 힘으로 정직하게 살고자 했을지라도 한 평생 동안에 불
로 소득으로 얻은 것이 이 호박뿐이겠는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익명의 손길에 의해 살아온 것이다. 그 수고의 손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시장 뒷골목에 옹기종기 짐을 풀고 앉아있는 촌로들 얼굴을
보며 혹여 그네들이 호박일지 몰라 죄송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