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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시-김영미]한 남자를 추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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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77회 작성일 05-04-0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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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남자의 죽음을 듣는다. 일면식도 없던,
그러나 어쩐지 낯설지 않다. 문학을 소망했다는
그 남자 마흔 해 푹 절인 석유내 나는 영혼
반 평 남짓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죽은지 이틀만에 발견되었다.
사인은 아사 직전의 부실한 몸
스스로 찌른 인슐린 주사 쇼크로 추정되나,
정작, 그 영혼에 성냥을 그어 던진 건
십 년 연애 끝에 이룬 결혼이었던 모양이다.

그 남자 까치발 들고 넘보는 세계
못내 불안했던 것인지
그 여자, 그 남자가 소설을 쓸까봐
문학하는 패거릴 만날까봐
늘 기민하게 차단했다는데.
문 안 쪽 기후 속에서
아물지 못한 그의 상처 줄곧 덧나고
고름이 더께 앉았던 모양이다.

맨 처음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을 것이다.
면도하다 슬쩍 벤 턱 밑처럼,
그 상처에 수상한 홀씨 얼굴 들이밀 때도
홀씨 자라나 그 사내 모조리 먹어치울 줄
그 여자는 물론, 그 자신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구겨진 한 사내
풀기 없는 빨래 한 벌
그렇게 가버렸다.
그 때,
그가 매만진 경계의 언저리
생살 타는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