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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시-권정남]트럭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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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35회 작성일 05-04-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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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있는
트럭섬은 전쟁 박물관
한 때 총성으로 불을 뿜던 배가
바다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던 곳

난파된 배 안에는
구급 약통이 열린 채 삐걱되고
찢겨진 군복 바지가 수초와 함께
물살에 휩쓸린다
녹이 슨 철골 사이로
산호가 꽃으로 피어 만발하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전쟁의 두려움을 잊으려고
병사들이 마시던 술병이 엎질러진 채
거품만 내뿜고
끈풀어진 군화 한 짝 뱃전에 놓여있다.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 상관 없다는 듯
흩어진 해골 사이로 물고기들만
재미있게 숨박꼭질 한다

난파된 트럭섬 밑으로
바다가 물살쳐오면
배 위에서 불을 뿜던 총소리
아우성소리
배가 서서히 기울며
가라앉던 소리들이
남태평양 물살과 함께
소용돌이 쳐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