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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1999년 [시-권정남]벽화를 그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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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02회 작성일 05-04-0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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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모자를 거꾸러 쓰고
벽화를 그린다
밤 내 끌고 온 바다를 벽에다가 풀어 놓더니
그 남자 물결이 되어 출렁이다가
붓 하나 든 채 갈매기 되어 벽에 엎디어 있다
차들이 무서운 속력으로 지나가버리는
바람 한 점 없는 도로변
물감통 하나 들고 태양속을
걸어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다리 꼭대기 그 남자
얼굴이 붉어 있다
도시 소음 붓으로 으깨어
흰구름 만들고 나무에 숨결 불어 넣으면
그림을 바라보던 도시인들 눈빛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한다
담벼락 끝에서 홀로 휘파람 소리 키우며
도시를 색칠하는 그 남자
모자 거꾸러 쓴 채 자기가 그린 숲에 갇혀
오래오래 나오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