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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5년 [동화-이희갑]몽당 빗자루를 가지고 온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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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10회 작성일 06-01-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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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옛날, 푸른 숲이 우거지고 꽃향기가 일년 내내 바람결에 풍
겨오는 아름다운 왕국이 있었습니다.
왕국의 임금님은 아주 지혜로워 나라는 점점 강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더 강한 나라,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자기를 도와 줄 사람이 필요
한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다 더군다나 임금님에겐 공주 하나 밖에 없었
습니다.
장차 나라를 다스릴 청년을 구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전국에서 저마다
실력 있고 잘나간다는 청년들은 다 모였습니다. 며칠을 두고 심사한 결과
마지막으로 네 명의 청년이 뽑혔습니다. 하지만, 한 명만이 뽑혀 장차 나
라를 이끌어가며 공주와 결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명의 청년은 임금님 앞에 불리어 갔습니다.
“오! 참으로 반갑소. 여러분은 이 나라 제일의 사나이들이오. 하지만, 나
라를 다스림에는 실력만 가지고는 아니 되오. 이제 석 달 동안 세상에 나
가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하나 선택하여 그것으로 지혜를 쌓는
도구로 삼은 뒤 궁궐로 돌아오시오.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길 바라오.”
네 명의 청년들은 지혜를 겨루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각각 길을 떠났습
니다. 그리고 열심히 세상을 돌아보았습니다. 때로는 배를 곯으며 피곤에
지치기도 했지만 장차 왕국의 주인이 될 일과 어여쁜 공주의 얼굴을 떠올
리면서 고통을 꿋꿋이 참았습니다.

어느덧 석 달이 다 되어 네 명의 청년은 임금님이 있는 성에 도착하였
습니다. 성안에는 임금님과 많은 신하들이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천사같이 눈부신 공주도 임금님 옆에 서있었습니다.
네 명의 청년들은 지혜를 펼친 물건을 들고 차례로 들어 와 자기가 한
일을 보고했습니다.
먼저 동으로 떠났던 청년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청년은 멋진 나팔을 바
쳤습니다.
“저는 이 나팔을 불며 세상을 다녔습니다. 매일 쉬지 않고 나팔을 부느
라고 불룩 나온 배도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멋진 저의 나팔 소
리를 듣고 일손도 멈춘 채 즐거워했습니다. 사람마다 즐거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합니다.”
임금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한 번 나팔을 불어 보아라.”
“뚜뚜따따 따따뚜뚜….”
청년은 능숙하게 나팔을 불어 재꼈습니다.
“와, 정말 아름답고 멋진 나팔 소리다!”
모두 나팔 부는 청년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청년은 자신감 있는
눈으로 공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씩씩하게 물러
났습니다.
다음엔 서쪽으로 갔던 청년이 하얀 말을 끌고 들어왔습니다. 하얀 갈기
가 너무도 아름다운 말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눈을 커다랗게 떴습니다.
“이 말을 타고 저는 세상을 두루 살폈습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저
의 힘을 필요로 할 때 어떤 곳이라도 지체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사람
들을 위해 하얀 말에 채찍질하며 쏜살같이 다닐 때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
다.”
임금님은 이 번에도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한 번 말 위에 올라 타 보아라.”
청년은 말위에 성큼 올라탔습니다.
“히이이잉, 히잉!”
하얀 말이 멋진 갈기를 휘어 치며 소리를 내었습니다. 청년의 우람한 모
습에 모두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청년은 공주를 지긋이 바라보
면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물러섰습니다.
이 번에는 남쪽으로 갔던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번쩍이는 커다란 수레
가 그의 손에 끌려왔습니다.
“우와, 저 저것 봐라!”
사람들은 수레에 담긴 물건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저는 수레를 가지고 세상의 귀중한 물건을 다 담아 왔습니다. 나라를
다스리자면 돈이 필요합니다. 제가 가지고 온 물건은 모두 값이 무척 나
가는 것뿐입니다. 이걸 구하려고 저의 등이 이렇게 휘어지고 손바닥에 허
물이 몇 번이고 벗겨졌습니다.”
임금님은 이 번에도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 빛나는 목거리를 목에 걸어보아라.”
“우와아!”
신하들이 떠나갈 듯한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청년의 가슴은 온통 번쩍
이는 금빛으로 반짝였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금화를 수레에 휘어휘어 뿌
리며 공주에게 눈을 찡긋하더니 점잖을 피우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갔던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어? 저 저게 뭐야!”
신하들은 처음에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신하는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청년이 임금님에게 내민 건 아주 볼품없는 몽당비 하나였습니다.
“세상에 나가 백성을 위해 일하려고 하니 제 자신이 너무도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쓰레기를 청소하는 일 밖에 없
었습니다. 그래서 석 달 동안 비질 밖에 하질 못했습니다. 무능한 저를 용
서해 주옵소서.”
청년이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였습니다. 왠지 이 번에는 임금님이 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긴장한 얼굴을 하며 두 손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습니
다. 그리곤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한참 머뭇거리던 청년이 퇴장
하려고 뒷걸음질 할 때였습니다.
“게 섯거라. 그리고 나를 향해 머리를 들라.”
청년이 임금님을 바라보자 임금님은 어느 샌가 커다란 묶음 책 하나를
들고 서있었습니다.
“내 이미 여러분들이 한 일을 암행어사로부터 자세히 보고 받아 잘 알
고 있느니라. 세 청년은 모두 자기 자랑하기에 바빴도다. 나팔 든 청년은
아무 때나 나팔을 불어 대어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으니 이 건 쓸데없는
말을 쉴 새 없이 지껄이며 다닌 것과 같은 것이며, 말 탄 청년은 말을 타
고 다니며 백성을 돌보았다고는 하나 자기보다 탈 것이 허술한 백성들을
깔보고 다니었도다. 이런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백성을 깔보는 건 뻔한
일이니라. 또, 수레에다 귀중품을 싣고 온 청년은 나라의 경제를 걱정하는
듯하지만 욕심이 지나쳐 나라의 귀중품을 이미 남몰래 자기의 창고에 숨
겨 놓은 걸 짐이 알고 있으니 어찌 도둑보다 낫다고 하겠는가.”
임금님의 목소리는 어느 때 보다 위엄이 있었습니다. 끼득끼득 웃던 신
하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의 말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이 나라 곳곳에 있는 더러운 쓰레기를 비가 몽당비가
되도록 열심히 청소하고 다녔으니 그대가 거쳐 간 곳은 오직 깨끗함 뿐이
니라. 모두가 하찮게 여기는 일일지라도 겸손하게 말없이 이 나라를 위해
몸을 다 바친 그대의 뜻이 곧 나의 뜻이니 그대가 진정 충성을 다했노라.”
임금님은 몽당 빗자루 가지고 온 청년을 장래 지도자로 정했습니다.
어여쁜 공주와 결혼하는 날 온 백성들이 거리에 나와 모두 기뻐했습니
다. 그런 다음 날, 왕국의 방방곡곡 게시판 마다 이런 글이 나 붙었습니다.
이제까지 나의 뜻과 다르게 산 사람은
이제 새로운 왕국에서 다시 시작하길 바라노라.
기회란 늘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사람은 행할 찌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