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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5년 [수필-이은자]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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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30회 작성일 06-01-3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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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수도 물이란 편리함을 가지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 마다 한 두 군데 우물이 있어 그 것에 식수를 의존하고 빨래나 청
소는 허드레 물 아니면 좀 떨어진 개울로 가야 했다. 우물에서 두레박으
로 물을 길어 집 안 까지 이고지고 다녔다. 그 때 펌프물은 대단한 발전이
요 경이로움이었다.
마당에 펌프를 박아서 언제라도 물을 펑펑 길어 올릴 수 있는 집을 우
리는 무척 부러워 했다. 수맥을 찾아 지하로 관을 심는 일은 여간 큰 공사
가 아니었지만 한 번 박아놓은 펌프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끄떡없이 물
을 끌어 올려주었다. 수 십미터 까지 관은 수맥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펌
프물은 우물물 보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겨울엔 미지근 하고 여
름엔 차가웠다. 그런데 펌프는 젓기를 그치면 어느 새 물이 다 빠져 내려
가고 빈 통으로 서 있게 마련이다. 간혹 그렇지 아니한 펌프도 있긴 하지
만 대개가 그렇다. 펌프 주위에는 약간의 물을 놓아둔다. 마중물로 쓰기
위함이다. 가라앉은 물을 불러 올린다 해서 붙혀진 이름이리라. 한 바가지
의 마중물은 무한정의 지하수를 퍼 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마중물은
언제나 한 바가지로 가능하지는 않다. 펌프의 물(수맥) 깊이에 따라서 한
바가지 혹은 한 초롱의 물이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
우리는 갈등 한다. 왜?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물을 다 쏟아 부어도 펌프에
선 물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다. 그럴 바엔 이 물로 아
쉬운 대로 갈증을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 싶다. 믿음으로 마중물을 붓고
힘 것 젖지않고선 목적을 이룰 수는 없다. 단번에 붓지 않고 찔끔찔끔 부
어서는 낭패를 보기가 십상이다. 퍽퍽 빈 공기만 올리고 사그라져 내린다.
그런 때야말로 본전도 못 건지는 셈이 된다. 한 드럼 통 만큼 물을 끌어
올려 놓아도 우리는 먼저 부은 마중물을 따로 구분해 내지 못한다. 마중
물은 자기 몸을 풀어서 새 물과 합쳐져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담겨지는 그
릇 모양에 자기의 몸을 동화 시킨다.
나는 하나님께 많은 것들을 간구한다. 그런데 내 자신이 인정 하거니와
전적의탁의 자세로 간구하지 못 했다. 차선의 대비책을 비축해 둔 채 비
는 것이다. 소위 말해서 자아(自我)를 완전히 내려 놓지를 못 하고서.
그런 기도는 거의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솟아 올라올 새 물을 확신
하고 마중물을 붓듯이 그렇게 기도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
나는‘갈뫼’가족으로 지나온 세월이 거의 30여년이 돼 온다. ‘갈뫼’를
딛고서 문단에 얼굴 내민 것이 작년 여름이었으니 게으름이 어지간 하다.
그 게으름을 내버려 두지 않고 종용하고 끌어내고 거들어 준 사람들이 있
다.
나는 때때로 그런 사람들을 내게 있어 마중물 이라 생각한다. 내가 쓰
는 글 몇 줄이 무슨 그리 대단한 힘이 있어 타인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
겠나. 나 아니라도 좋은 글 쓰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활자 공해나 일으켜
무엇 하겠나. 내 글로‘갈뫼’에 누를 끼치는 것 같고….
몸이 아플 때 이 같은 상념이 더 세차게 밀려든다. 포기하고 있으면 그
들은 내게 다가와‘미쳐 정서를 못 한 원고라도 내어 놓으라, 내가 잘 정
서해서‘편집에 늦지않게 실으마’한다. 회합이 있는 날, 눈 비 오는 날,
내가 혼자 힘으로 도저히 밖에 나갈 수 없는 날 내 집 현관에 차를 대고
나를 실어 나른다. 식욕이 없는 날엔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 별식을 함
께 한다.
별 수 없는 내 글에 과한 칭찬을 한다. 사람인지라 늙었어도 칭찬 들으
면 살 맛도 나고 조금은 비위가 생겨서 또 다시 펜을 잡는다.
이런 사람들 아니었더면 한 번 밑창까지 내려간 나의 행보는 더 이상
새 물을 자아올리지 못 하고 말았을 것이다. 마중물은 글 쓰기에만 국한
된게 아니다. 삶 전반에 걸쳐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나도 그 누구에게 마중물이 되어준 일이 있었던가? 나는 작은 선행을
하면서 한 웅큼 쯤은 나 자신을 위해 뒤에 감추어 챙긴다. 나를 완전히 풀
어서 누구를 세워 준 일은 아직 없었던 것 같다. 한 바가지면 족할까? 두
바가지 아니면 한 초롱 모두 부어야 되는 상황 인가? 계산을 한다.
상황적 가치로 따지자면 마중물 한 두 바가지는 동해 바닷물 보다 값진
물이다.
나도 남을 일으켜 주고, 세워 주고, 끌어 올려 주고..
그런 마중물이고져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