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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5년 [시-신민걸]CAFE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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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39회 작성일 06-01-3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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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돌 신영초등학교에서
낯선 주문진, 그나마 아는 터미널을 찾아
걸었다
걸으며 보았다, 밤이다
소읍의 간판들은 보다 남루하고 닫혔고
간혹 불켜진 가게 안에선
서로 아는 동네 사람들 몇이 둘러앉아
느린 화투를 친다
양양고개를 넘어
네온사인이 현란한 단층 혹은 이층짜리 건물들을 지나며
우리 지난 시절을 가늠한다
거리는 조용하고
가끔 술 마시는 젊은이들의 호탕한 웃음이 쏟아져나와
비 내린 직후의 거리를 더 지저분하게 만든다
다방이 제일 많고 노래타운 간판이 제일 화려하고
아홉시 뉴스가 끝나가는데
거리를 걷는 사람은 없다
주문진파출소를 지나 늙은 여성의용소방대를 지나
환동해출장소를 돌아
수협 농협을 지나
지난 날 초라한 몰골의 내가 서 있던 한 터미널을 찾아
자꾸 걷는다
가을이 가고 있다
나도 또한 늙어
가고 있다
참, 파출소 앞에서는 경관 몇이 불시 음주 단속을 하고 있다
주문초등학교를 지나
단풍이 도드라지게 찍힌 플래카드들을 지나
대체로 문닫은 가게들을 지나
터미널에 왔다
터미널이 서 있다, 막차가 없다
나는 지금 떠날 요량도 아니다
맥주나 한 잔 할 자리를 찾아보자
눈도 바쁘지만 생각이 더 분주해졌다
신발 뒤축은 늘어졌고 지친 나도 젖었다
더 가봐야 그렇고
터미널을 반환점 삼아 돌아온다
처음으로 걸어보는 곳
일별했던 간판들을 표지 삼아 돌아간다
다시 돌아간다
돌아간다, 어디로
나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신영초등학교를 지나
소돌로 간다
바다가 간지럽게 춤춘다
나는 취하고
나는 언제나처럼 돌아간다
비가 지난 하늘에는
참 오랜만에 보는 별들이 번창하다
나 저 별들에게도 돌아간다
이렇게 말해야겠다
아는 사람을 찾아 주문진의 오늘과 내일을 말해야겠다
여기는 바다가 성업중인 카페다
바다가 내내 춤을 춘다, 홀로 앉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