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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5년 [시-신민걸]저녁과 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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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77회 작성일 06-01-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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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탕처럼 눌어붙어 느릿느릿한 퇴근길
열쇠가 없어 잠시 아파트 앞 작은 공원 검은 나무 의자에 앉아
오매불망 아내를 기다리며
오규원의“허공과 침묵과 하늘 그리고 시선”을 읽다가
파란불에 기어 변속해 지나가는 냄새 싫은 소리와
맑게 찰랑이는 그네 오가는 소리를 듣다가
발 아래 분주히 오가는
크기도 다양한 개미들의 길을 따라 두리번거려 보다가
살짝 발을 들어 옮기고
나무 기둥에 붙은지 오래라 흐릿한 포켓몬 스티커와
그 아래 주홍색 크레파스로 오래 공들여 그린
긴 머리 양갈래로 땋은 치마 입은 계집아이를 보다가
반대편 의자에 손주를 데리고 나온 노옹의
지극한 눈길을 마주보지 못하다가
손바닥처럼 시집을 접어 가방에 넣고
안녕을 외치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꼬마들의 발자국을 따라
개미보다 앞서 집 안으로 간다
아내보다 먼저 잔잔한 바람처럼 문 앞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