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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5년 [시-장은선]농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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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13회 작성일 06-01-3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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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야구모자에 땀내 절은 런닝 걸친
학같이 여위어가는 농부
땀으로 살붙은 이삭에 묵례하듯
지나온 자기 삶을 솎아내며
쉬임없이 피사리하고 있다
농기계도 못들어가는 다랑이 논배미에
겨울산을 내려온 부엽토 녹은 물로
닫혔던 마음을 열듯이 물꼬를 터
길을 지우고 다시 길을 트며
써레질을 했다
세상의 공책엔 서투른 글씨를 써
이삭을 엿보는 들새떼에게
훠이 훠이 몇마디 내던질 뿐
이마에 주름이 패여도 깊은 셈을 하지 않는다
흙투성이 작은 논물에 온삶을 담그고
귀한 꽃 보다듬듯 벼포기를 쓰다듬으며
쌀알만큼 어여쁘고 튼튼한 섭리가
세상에 있느냐고 헛웃음을 짓는다
가을을 재촉하는 투명한 바람에
허리에 찬 면수건이 습자지처럼 흔들려
신문활자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내려
쌀뜨물처럼 흘러온 나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