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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2005년 [시-김향숙]뜨개질 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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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31회 작성일 06-01-3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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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 첫서리 소식이 들릴 때쯤
가을비 내리는 날은
뜨개질하기에 좋은 날이다.
실타래 넉넉한 바구니를 가져와
창문 곁에 앉으면
하얀 털강아지도 따라와 무릎담요아래 엎드리고
대바늘 머리 맞대어 소곤거리자
타래실 몸을 풀어 길을 떠난다.
동요부터 성가에서 가곡을 거쳐
흘러간 가요까지 메들리로 흥얼거리다보면
큼지막한 약탕기에서 은은히 퍼져나는 햇대추차 향
바늘코 숫자야 더러 어긋나기도 하지
낯익은 옆구리를 지나
술술 풀었다가 되돌아 조이고 다듬어가는
이 남자의 가슴과 어깨가 폭신하다.
유리창으로 흐르는 빗줄기에
바구니 속 몸 가벼워진 실타래가 잠시 눈을 식히고
오늘 밤 먼 산 첫눈이 되려는지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