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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2002년 [소설-강호삼] 사자(獅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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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363회 작성일 05-03-2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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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獅子)

-내일 마사이라마에 가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방에 득실득실
한 것이 사자 떼들입니다. 내일 실컷 보십시오,
이번 아프리카 여행의 안내를 직접 맡은 여행사 김 사장의 호언에도 불
구하고 마사이마라의 끝없이 넓은 초원지역 여기저기를 랜드로바로 오후
내내 쏘다녔지만 끝내 사자새끼 한 마리 구경할 수 없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사자야 많이 봤지만 자연상태, 그것도 아프리카의
더 넓은 초원에서 조우한 사자의 무리는 경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제 나꾸
루 호수에서 수십만 마리의 팰리칸과 플라밍고를 관광하고 숙소인 롯지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우연찮게 사자 십 여 마리가 풀밭에 드러누워 한가
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용케도 우리가 탄 랜드로바의 운전기사가 발
견하고 차를 사자들 곁에 바짝 붙여 세웠다. 사자들과의 거리 가 불과 3, 4
미터, 사자들은 자신들을 보고 있는 인간들을 무시하듯 일별하고는 꿈쩍
도 않고 그대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톰이라는 이름의 케냐인 운전기사가 운전석에 설치된 무전기를 잡고
자기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스와힐리어로 무어라고 이야기한 뒤, 일이 분
도 채 지나지 않아서 각국의 관광객을 싣고 사바나 초원을 누비고 있던 랜
드로바들 수십 대가 한꺼번에 모여들면서, 서로 사자들이 잘 보이는 위치

에 차를 세우느라 북새통이 되었다.
-톰! 렛스 고우.
숙소인 롯지로 돌아가는 시간과 일정을 고려한 가이드 김 사장이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
-아니, 좀 더 보고 갑시다.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 만난 사잔데....
일행 중 모 지방대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영택이 좀 더 보고 갈 것
을 주장했다. 일행도 같은 심정이었다.
-내일 마사이라마에 가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방에 득실득실
한 것이 사자 떼들입니다. 내일 실컷 보십시오.
운전기사 옆 좌석에 탑승한 라이온 김 사장이 웃음 띤 얼굴로 일행을
뒤돌아보며, 달래는 듯한 말투로 양해를 구했다. 아쉽긴 했지만 마사이라
마에 가면 사자들을 실컷 본다는 바람에 내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
러나 이영택은 못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는 일행 중 웬
일인지 이번 여행 초부터 내게 남다른 친밀감을 표시해 온 인물이었다. 그
래서 그의 행동이 약간 경망스럽다는 느낌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여행
중 잠시 일상을 일탈한 애교 정도로 치부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내게 있어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이번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은 그 동안
천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연구에만 몰두해 온 직장을 어쩔 수 없이 밀려
나와, 방황했던 정신적인 공백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변신의 계기가 필요
했던 것이다. 언제까지나 마냥 분노하고 좌절한 체 표류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여행을 결심하게 한 가장 큰 결정적 이유
는 그토록 야심차고 패기만만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퇴직
에 이어 친구의 죽음을 맞게 된 나는 인생과 산다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성
찰하면서 살아 온 지난 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셈이다. 그러나 허탈과
실의에 이어진 정신적 공황을 도저히 극복해 낼 수 없었다. 아이들의 혼사
같이 요긴할 때 쓰려고 묻어 두었던 퇴직금 일부를 허는 결단을 내렸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일반적으로 오지라고 알려진 아프리카 여행을 통해

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서 탈출해야만 되었던 것이다.
평소에 등산을 하면서 알고 지내던 여행사의 김 사장이 아프리카 여행
을 제의했을 때, 나는 현재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은 것 같
았다. 아프리카의 더 넓은 자연 속에서 본능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물들
로부터 무언가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인천에서 홍콩을 경유해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한 이튿날 저녁, 호텔에
서 각자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들 백수라고 겸손한 척 하면서
도 은근히 과거의 직장과 직책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전직 구청장에, 정
부 중앙부서의 국장, 자영업으로 성공한 사람과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
어 돈을 주체 못하는 투기꾼과 졸부들도 있었다.
마지 못해, 나도 떠밀려나온 직장을 밝히긴 했지만 어떤 직책에 있었는
지는 밝히지 않았다. 직책이 낮아서 부끄럽다기보다는 지금에 와서 그 직
책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영택이 모 지
방대학의 교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처음부터 튀는 옷차림과 신중치 못
한 처신으로 일행의 시선을 끌었다. 작은 키에 아랫배가 볼록 나오고 대머
리를 베레모로 감추고 붉은 악마의 응원 복장인 러닝에, 아래는 베이지 색
반바지를 입고 사사건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김 사장의 재촉으로 사자들 곁을 떠났으나 우리는 롯지로 돌아오는 도
중에, 아프리카의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새끼를 거느린 코끼리 가족과 경
망스럽게 짧은 꼬리를 흔들면서 풀을 뜯고 있는 가젤과, 임팔라. 누. 얼룩
말과 누 무리의 주위를 서성거리는 하이에나와 자칼들을 보았다. 키 큰 우
산나무만이 군데군데 서서, 전형적인 사바나의 광활한 초원의 장관을 이
루고 있는 아프리카를 보았다. 끝도 없이 광활한 초원에 한가하게 누워서
되새김질하는 버팔로 무리와, 작은 바위 같은 코뿔소가 풀을 뜯고 있는 모
습을 보며 저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동물의 왕국과 지오그래픽 TV 채널에서 보았던 동물들의 생생한 실제
모습들을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본다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숙
소인 롯지가 보이는 거리에서, 나뭇가지 전체가 예리한 가시 투성이인 우

산나무가 밀집한 숲길을 지나다가 새끼를 거느린 다섯 마리의 기린 가족
을 만나는 즐거움을 덤으로 가졌다.
기린들은 우리가 가고 있는 길 양옆의 우산 나뭇가지에서 잎을 뜯어먹
다가 우리가 탄 랜드로바를 보고는, 길을 가로 건너 왼쪽에 있는 자기들
무리와 합류해 크고 긴 다리와 목을 겅중거리며 우리의 눈앞에서 겅중겅
중 뛰어 숲 속으로 사라지는 기린 가족들을 보며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구상에 아직 이런 자연상태의 비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사파리 관광에서 소위 빅 파이브라고 하면 보통 사자와 코끼리, 코뿔
소. 버팔로. 표범을 말한다. 우리는 이틀 동안 암보셀리와 나꾸루 국립공
원에서 코끼리와 버팔로, 코뿔소와 사자를 보았다. 라이온 김 사장은 남은
한 종류인 표범은 야행성 동물이어서 여간 운이 좋지 않으면 보기 어려우
리라는 설명이었다.
이밖에 누라든가 임팔라. 가젤과 개코원숭이, 홍멧돼지와 하이에나, 자
칼 같은 동물들이 케냐의 마사이라마와 암보셀리, 나꾸루, 탄자니아 쪽 세
링기치의 끝없는 사바나 초원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하마와 악어들은
마라강에 터를 잡고 서식하면서 누와 얼룩말들이 건너는 강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동물 중에도 으뜸으로 치는 동물은 역시 사자였다. 우
리가 동물원에서 보는 사자는 이미 사람들에 의해 순치되어서 본디 사자
가 가져야 할 용맹성이나 위엄을 상실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사자
는 초원을 거침없이 내달리며 뭇 짐승들을 향해 표효하는 자연상태의 사
자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확인했다. 그 놈들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 앞에서
도 꿈쩍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떠서 깔보는 듯이 의연했다.
수많은 동물 가운데 유독 사자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바로 이 의연함
때문일 것이다. 뭇 짐승들 틈에서 아무 것도 꺼릴 것 없이 위풍당당한 사
자의 절대적인 카리스마가 인간들을 매혹시키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고,
인간들은 누구나 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조금씩은 본능적으로 사자

의 그런 카리스마를 동경하고 닮고 싶은지도 모른다.
마사이라마에 와서 사자를 한 마리도 만나지 못하자, 김 사장의 재촉
때문에, 나꾸루의 초원에서 만난 그 사자들 무리를 좀 더 보지 못하고 떠
났던 것이 더욱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자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호언장담했던 김 사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영택이가 노골
적으로 다시 불만을 터트렸다. 김 사장의 나이가 대여섯 살은 더 위일 것
같은데 반말 짓거리였다.
-어이 김 사장! 그토록 많다든 사자, 지금 여기 어디 있어요?
김 사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다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이영택
의 눈길을 피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이곳까지 온 것은 사실 자연상태
의 아프리카의 동물들, 그 중에서도 특히 백수의 제왕이라는 사자를 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자를 보지 못하는 것이 어찌 김 사장의 탓이겠는가.
인천공항에서 홍콩,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 다시 케냐의 나이로비까
지 비행기 편도로만 무려 열 아홉 시간이나 걸리고 왕복으로는 무려 삼십
팔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아프리카를 김 사장은 삼십여 차례나
오간 아프리카 관광의 대부다.
세종문화회관 뒤쪽 허술한 빌딩 삼층에 사무실이 있는 김 사장의 여행
사는 규모도 작고 직원들도 몇 안 되는 작은 여행사지만 아프리카의 관광
에 관한 한 그의 여행사를 따라 올 만한 노하우를 가진 관광회사가 아직
한국에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국내 공영방송국인 KDS에서, 아프리카
현지 촬영에 자문을 구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아프리카 통이다.
김 사장은 본래 사업가가 아니라 등산가였다. 젊은 시절, 산이 있는 곳
이면 어느 곳이든 가서 산을 올랐다. 자유당 정권에 이어 박정희가 군사쿠
데타를 일으켜 국민을 총칼로 협박하고 금방이라도 김일성이가 남침할 것
처럼 겁을 주면서 독재를 하던 시절, 의식 있는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파렴
치한 정권과 맞서 군사독재 타도를 외치며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
는 천성으로 내성적이고 섬약한 성품이어서 직접 학생 데모대에 뛰어 들

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사회 현실과 가치관의 왜
곡을 보면서 숨 막혀 했다. 그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분명 현실도피
의 일환이었다. 그냥 보고 있기에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
던 것이다. 돌아가는 정국이야 어떻게 되었든 산의 정상에 오르면 모든 것
이 덧없고 가소로워지면서 가슴이 확 트여왔다. 주위에서 현실도피이고
사치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김 사장은 미소와 침묵으로 일관하고 묵
묵히 산을 찾아 산을 찾았다. 이렇게 시작한 등산이 어느 듯 하루라도 산
을 오르지 않고는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등산비용이 떨어지면 고층건물 청소와 같은 막노동으로 돈을 만들어 다시
산으로 갔다. 그러다가 고O돈과 같이 한 알래스카의 맥킨리 봉 등정을 끝
으로 산에 오르는 것을 그만두었다.
맥킨리 봉 등정은 라이온 김 사장이 유일하게 실패한 등정이었다. 당시
고O돈은 OO일보 산악 팀을 이끌고 산의 동쪽 루트로 정상정복을 감행하
고 있었고 김 사장 자신이 지휘하는 대한OO산악 팀은 서쪽 루트를 공략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베이스 캠프를 출발할 때까지 하늘은 파랗게 맑
고 쌓인 눈이 눈부시게 빛나는 쾌청한 날씨였으나 한 시간도 못 돼, 눈이
날리고 세찬 바람이 몰아치면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악천후로 변했
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하산할 것을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하산하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김 사장은 그
때 비로소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지금까지는 곳곳에 널려 있는 크레바스
를 용케도 피해 왔지만 어느 때 발을 헛딛어 크레바스로 추락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철수하는 길에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끝에 김 사장이 이끈
등반 팀은 무사히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으나 OO일보 산악 팀을 이끈 고O
돈 대장이 조난 당했다는 비보를 들어야만 했다. 같은 산악인을 눈 속에
묻은 OO일보 등반대와 김 사장이 이끈 등반대는 본국 정부의 철수 지시
로 눈물을 뿌리며 귀국 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귀국해서 김 사장은 다
른 깨달음을 얻었다.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산들을 올랐지만 산은 결코
인간에게 정복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라이온 김 사장은 숙고 끝에 산을

오르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바라보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이
김 사장이 여행사를 차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계 각지를 등반하기 위해
여행한 것이 여행사를 차리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암보셀리 롯지에서 한밤중 잠이 깨었다가 김 사장의 침대가 빈 것을 보
고 나도 아프리카의 밤이 궁금해서 밖으로 나왔다. 혼자서, 숙소와는 조금
떨어진 오픈 카페의 등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고 킬리만자로를 바라보고
있는 라이온 김 사장을 보았다. 킬리만자로도 그가 두 번이나 올랐던 산이
었다. 낮 동안, 여러 잘난 관광객들의 모든 지청구를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다 받아 주던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
지만 나는 그만의 시간을 존중해서 인기척을 내지 않고 조용히 방으로 돌
아왔다.
이번 여행자들도 대부분이 환갑을 넘긴 사람들로 팔십에 가까운 사람
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 자리를 물러난 기업체의 임직원이었거나 퇴직한
공무원들과 부동산 투기로 졸부가 된 사람과 한때 쿠데타 세력으로 잘 나
가던 늙은 퇴역 군인도 있었다. 나라가 잘 살아 너도나도 해외로 여행이
잦지만 아직 젊은 사람들은 직장과 만만찮은 경비 때문에 아프리카로의
여행은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다
김 사장도 환갑 진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
보다 현장을 직접 뛰는 것이 좋았다. 웬만큼 회사의 규모도 틀이 잡혔으므
로, 이번 여행도 구태여 김 사장이 가이드로 따라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특히 어려운 손님이 많아 젊은 직원을 동행시켰을 때
혹시라도 야기될 수 있는 실수를 염려해 김 사장이 직접 동행을 했다가 사
자 때문에 단단히 망신살이 든 셈이었다. 동물 사파리에 관해 이것저것 설
명하느라 한시도 입을 쉬지 않았던 김 사장은 면목도 없고 의기소침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귀로에, 입을 봉한 채 일체 말이 없었다. 그가 어색해 할
까봐 일행은 더 이상 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이영택은 여전
히 투덜거렸다. 사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어찌 김 사장의 탓이겠는가.
그러나 모를 일은 그 많다던 사자가 그날 따라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김

사장을 난처하게 만들다니 김 사장으로서는 여간 망신스러운 날이 아님이
분명했다.
시즌이 일러서 롯지에는 우리 일행들뿐일 것이라고 했는데 영국과 오
스트레일리아, 덴마크. 독일 미국 등 각 국에서 몰려 온 사파리 관광객들
로 식당 안은 만원이었다. 음식 먹는 소리와 포크 부딪히는 소리와 웃음소
리, 각국의 언어들로 이야기하는 소리들로 식당은 분주하고 활기를 띠고
있었다. 밖에서는 요리사 모자에 흰 가운을 입은 케냐인 요리사들이 연기
를 피워 올리면서 계속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낯선 음식에 더욱이 소식인
나는 몇 가지 음식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고 밖으로 나와서 벤치에 앉
았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마치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것 같이 명멸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옆자리에 앉았다. 돌아보니 이영택
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을 같이 올려다보면서 말을 걸어 왔다.
-뭘 그렇게 혼자서 처다보고 있능교. 별을 보고 있습니껴?
-예, 별을 보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보는 밤하늘이 이토록 맑고 아름다울 줄
은 몰랐습니다.
-정말 억수로 별이 많네예. 서울 같은 데는 이제 별이 안 보이지 예?
-글쎄요. 서울의 밤하늘에도 별들이 있긴 할 텐데, 요 근래 별들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눈여겨보진 않았지만 매연과 도심의 불빛들 때문에 요
즘 서울의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잠시 두 사람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느라 침묵했다. 고개를 돌리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역시 이영택이었다.
-참, 강 선생! 그제 자기 소개하실 때 OO청에 근무했다고 하셨는데....
-예에, 그 곳에서 거의 30여 년을 일했습니다.
-그러면 문성의씨를 잘 아시겠네요.
-문성의라고 했습니까?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소리라도 지를 뻔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게 있어서 문성의라는 이름은 기억하는

것조차 혐오스럽다. 그런데 이 먼 아프리카에 와서까지 그토록 혐오스러
운 이름을 듣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바로 문성의라는 인
물 때문에 천직으로 알았던 직장을 도중에 사직할 수밖에 없었고, 또 이번
여행도 그로 인해 표류하던 내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나는 문성의가 이영택이가 있다는 같은 모 지방대학 교수로 있
다가 청장으로 발탁되었던 사실을 생각해냈다.
-예에, 문성의 교수 말입니다. 우리 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그 쪽으로
갔지요.
-잘 압니다. 그 분 우리 OO에 청장으로 재직했습니다. 어떻게 그 분을
잘 아세요?
-문성의 청장 말입니다. 대학에 있을 때 나랑 참 친했습니다. 참 좋은
사람이었지예.
-아 그랬었군요.
그가 문성의더러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문성의를 좋은 사람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놀랐다. 그리고 도대체
사람이 좋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리송해지면서 머리 속에 혼란이 왔다.
그러면서 문성의가 OO청에 부임한 후 내가 사직할 때까지의 행적이 파노
라마처럼 한꺼번에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나는 대학의 교수라는 자가 그토록 비열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치열한 로비로 부하직원 천여 명이 되는 정부기관의 장이 된
그의 다음 목표는 차관이 되고 다음으로 장관이 되는 것이었다.
로비와 뇌물로 될 수만 있다면 대통령이라도 하겠다고 덤볐을 인물이
었다. 그가 OO청에 부임해서 맨 먼저 시작한 일은 자신의 카리스마적인
위상과 출세를 위해서 정부의 조직 하나와 천 여명의 공무원을 철저하게
사유화하고 사병화한 일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조직 하나가 그가 마구 휘두르는 몽
둥이 때문에 조직의 본래 목적은 저만큼 내팽개쳐 두고 모든 직원이 그의

눈치 보기에 전전긍긍하는 지경에 빠져들고 그는 마치 봉건군주시대의 제
왕처럼 군림했다. 이 년도 체 못되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그의 비위를 거
슬렸거나 마구잡이 횡포를 견디다 못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국장급 간
부 몇 사람과 과장 몇 사람을 비롯한 사십여 명의 직원들이 반 강제로 내
몰리거나 더러워서 사표를 내고 직장을 떠났고, 문성의는 기다렸다는 듯
이 그들이 떠난 자리에 자신에게 충실한 개들을 승진시켜 자신의 위치를
더욱 부동의 위치로 만들어 갔다.
OO청은 정부의 다른 기관과는 달리 준 연구기관에 속하는 관청으로,
권력이나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어느 직장이고 할 것 없이 조직
내 흔히 있는 사소한 부정과 인사에 관한 약간의 잡음은 있어도 정부 중앙
부서 기관 중에 청렴도가 가장 높아서 사표를 강요당하거나 강제로 내 몰
림을 당할 만한 부정부패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OO청이 업무를 개시 한
이후 가장 많은 직원들이 문성의의 횡포로 갖가지 터무니 없는 낙인이 찍
혀 자리를 떠났다.
처음 그가 부임해 왔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를 도왔고 필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대학에서 학생 이십여 명을 상대로 강의를 하던 그가 천여
명의 직원이 있는 정부의 중앙부서 장이 되었으므로, 아무리 천성적으로
교활하고 수단이 좋은 인물이라 해도 처음부터 직원 천여 명을 통솔하는
문제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청 내 아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모든
것을 거의 내게 의존하는 편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부산 OO지방청에 근무 할 때였다. 부산의 지
방청 청사는 용두산 공원에 있었다. 지대가 높고 차도가 사무실까지 확보
되지 않아 사무실까지는 58개나 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와야만 되는 곳
이었으나 지대가 높은 만큼 부산항이 한 눈에 조망되는 곳이었다. 출근 때
마다 계단을 오르는 일이 만만찮지만 계단을 다 올라와서 앞이 확 트인 부
산항과 멀리 남해 바다를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상쾌한 것이었다. 일제
가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곳에 터를 잡아 당시로서는 번듯한 건물을 지었
지만 60여 년이 지난 지금 건물은 형편없이 낡았다. 해마다 개축해서 지

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필요한 연구 장비들을 들여놓을 공간마
저 없을 정도로 사무실이 협소했다. 건물 신축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해마
다 요구했으나 우선 순위에서 언제나 뒤로 밀리고 있었다. 선거 때 유권자
의 표를 의식해야만 하는 정부가 금방 생색도 내지 못하는 연구기관에 수
백 억의 예산을 배정할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차
도만이라도 확보되어 직원들이 무거운 장비를 운반하거나 겨울철 난방연
료를 확보하는 부담을 들어 주길 바랬으나 그것도 쉽지 않는 일이었다. 그
때마다 나도, 이 나라 풍토에서 권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연구기관의 장이
된 것을 한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씁쓰레했다. 내게도 얼마만의 권
력 같은 것이 있었으면 하고 말이다.
내가 문성의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전 봄이었던 것 같다. 서울 본청에
있다가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지방순환 근무로 부산지방청에 내려가 있
을 때였다. 나는 사무실에서 별로 바쁘지 않는 연구 보고서를 읽고 있었
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카시아 꽃향기가 잔잔한 미풍을 타고 넘실거리면
서 밀려왔다. 공원 어딘가에 있는 아카시아가 꽃을 피운 모양이었다. 아카
시아는 가시하며 그 나무 모양새가 목재로써 별 쓰임새가 없음에도 불구
하고 꽃향기만은 싫지 않는 나무이다. 밝은 베이지 색의 포도송이 같은 꽃
에서 풍기는 향기는, 바로 곁에서 맡으면 향이 너무 짙어 탁한 느낌이지만
적당한 거리에서는 달콤하고 은은한 것이 아카시아 꽃향기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벌써, 봄이 깊었구나.>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았다. 아침을 토스트 한
개와 우유로 때웠기에 그 날 따라 시장끼가 일찍 찾아왔다. 오늘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하나를 생각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훗날
문성의의 충견이 된 이정국 사무관이 손님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나는 엉
거주춤한 자세로 이정국과 이정국 뒤에 선 손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손
님은 오 척 단구에 얼굴이 둥근 편이었고 맑지 못한 칙칙한 얼굴에, 뱀 눈
처럼 작고 째진 눈이, 한 눈에 천박하고 야비한 인상을 주었다. 왠지 어디
선가 한 번쯤 본 듯한 얼굴이었다.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범죄
자를 많이 본 탓인 것 같아서 나는 속으로 실소했다. TV나 영화에서 다루
는 범죄자의 전형적인 얼굴형이 있지만 그것은 단지 맡겨진 배역일 뿐이
다. 배우 자신은 알고 보면 얼마나 선량한 사람인지 모른다.
-청장님. 소개 드릴 분이 계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OO국립대학에 계
시는데 논문 자료 때문에 오셨습니다. 저의 대학 때 은사이십니다. 오신
김에 청장님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그렇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참 이정국 사무관이 OO대학교 OO과를
나왔지요.
이정국은 지방대학 출신의 안배 차원에서 학교의 추천을 받아 6급 주
사로 특채되었다가 특별 승진시험을 거쳐 사무관이 된 사람이었다. 나는
앉아 있던 집무 의자에서 일어나 응접 소파 쪽으로 걸어나오며 손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내가 당황할 정도로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
다. 그리고 명함을 내밀었다. 그의 명함에는 OO대학 교수 외에도 전국
OO교수회 부회장. OO학회 회장 등의 직함이 무려 다섯 개나 너절하게
적혀 있었다. 명함의 직함들로 보아 소위 마당발로 로비에 능한 인물인 모
양이었다. 나는 그가 첫 대면인 데도 불구하고 왜 천박한 느낌으로 다가왔
는지 알 것 같았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아, 뭘요. 학계에 계시니까 부족한 부분은 오히려 저희들이 도움을 받
아야지요. 찾으시는 자료는 찾았습니까?
-네. 이 군이 도와주어서 쉽게 찾았습니다. 일제 때의 기록인데 저희
대학교 도서관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 잘 오셨습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또 오십시오. 오시는 길이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그 날 나는 그에게, 이정국 사무관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 미문
화원 쪽으로 나가는, 큰 길 못 미처 있는 작은 일식 집에서 정말 내키지 않
는 점심 대접을 받았다. 점심시간도 다 되었으니 점심을 사겠다는 그의 제
의를 몇 번이나 사양을 했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옆에서 이정국 사무관

도 거드는 바람에 마지못해 따라나서긴 했지만 왠지 영 내키지 않았다. 대
구탕으로 먹은 점심이 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따라 맛이 엉망이었던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자주 사무실로 찾아왔다. 대게는 이정국 사무
관이 그의 시중을 들었으나 내가 있는 사무실에도 찾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뱀을 보면 본능적으로 놀라는 것처럼 나도 왠지 그
가 싫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내 사무실을 찾아 온 손님이었다. 결
례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예의를 지켰으나 거리를 두었다. 퇴근 시간이
임박한 시간에 전화로 술을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맥주 한 두
잔 정도 하는 주량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정중히 거절했
다. 그러나 그가 산 점심의 답례로 나도 같은 왜식 집에서 점심을 냈다.
갑자기, 서울의 본청 청장이 새로 차관이 된 학교 후배와의 마찰로 사
직을 했다. 따라서 청장이 청 내 인물로 기용된다면 내가 청장으로 유력하
리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안다. 차분히 자리를 지키
며 연구에 종사하는 것이 내 적성에 맞는 일이다. 직원들을 지휘 감독하고
행정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일은 내 적성이 아니다. 전에도 청장 자리가 공
석이 되었을 때 당시 장관으로부터 그런 제의가 들어왔으나 간곡히 고사
했다. 이런 내 생각에는 그때도 변함이 없었다.
OO청장이라는 자리는 OO청이 정부의 연구기관이고 권력기관이 아니
어서 정부 내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색채가 배제된 인사가 가능한 자리다.
간혹 줄을 타고 외부의 학계 인사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문성의가 본청의 청장으로 발탁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
던 일이다. 나는 내가 청장 자리를 고사하는 대신 청 내에서 같이 일하는
유능한 후배 한 사람을 추천하고 있던 터였다.
처음 그가 청장으로 부임해 왔을 때 나는 한편으로는 놀랍고 또 한편으
로는 왠지 그와의 첫 대면에서 느꼈던 석연치 않은 인상이 마음을 어둡게
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줄을 타고 어떻게 청장이 되었든 형식적으로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청장으로 임명한 사람이었다. 공무원 조직은 국민이

자유 보통 평등 선거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을 정점으로 정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행정법상 대통령의 공무원 임용 행위는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한
행위이다. 공무원으로 결정적인 흠결이 없는 한 누가 뭐라든 대통령의 임
명행위는 존중되고 합법적이며 동시에 임명받은 공무원은 즉시 그의 직책
에 관한 권한 행사가 유효한 것이다.
나는 마음을 비웠다. 공무를 수행하는 데 개인적인 감정은 금물이다.
나는 깍듯이 그를 청장으로 예우했고 진심으로 그를 도왔다. 그리고 필요
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오랫동안 학교에만 있었기 때문에 모든 업무가
생소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내 노력 덕분인지 그는 예외로 업무
를 빨리 파악해 나갔다. 그리고 부임 초 한동안 그는 공개석상에서까지 내
가 민망할 정도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청 내에
서 자신의 카리스마가 확립되자 나를 멀리하기 시작하더니 종내는 내 의
사와는 관계 없이 지방청의 청장으로 전보해 버렸다. 그리고 무엇이 두려
웠는지 인사와 승진을 미끼로 한 자신의 충복을 내 밑에 심어두는 악랄함
을 보였다. 그때부터 나의 사사로운 행동 하나 하나까지 바로바로 보고되
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기초과학 연구를 주 업무로 하는 정부의 기관 하나
가 아무 이유도 없이 초긴장 상태에 빠져들면서 직원들은 자신의 신분이
언제 어느 때 변할지 전전긍긍하는 공포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다. 의식
있는 일부 직원들이 반발했으나 그 직원은 다음 날로 서울의 연고지에서
지방으로 전출되었고 뒤이어 이정국이와 같은 충견들을 동원해 지도감사
라는 명목으로 뒷조사를 해서 권고사직을 시켰다. 다른 정부 부서에서 보
면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30여 년 간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 직장에서 사직하는 쪽
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누구의 투서로 그의 결정적인 비위가 드러나면서
였다. 그가 당국의 조사를 받는 사이, 다시 후임 청장은 내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는 장비 도입 과정에서 뇌물을 먹은 결정적인 비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청 내와 청 밖에 있는 동업자(?)들의 결사적인 방
어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당당하게 현직으로 복귀했다. 그가 청

장으로 다시 복귀한 다음 날, 나는 지방에서 느닷없는 그의 호출을 받고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가 좋은 일로 호출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
으나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가 나를 만나야 할 현안이 없었기 때문이
다. 나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바로 본청으로 들어
갔다. 비서의 안내로 청장실을 들어서자마자 그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무
섭게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입술이 묘하게 실룩
거리더니 흉측한 두꺼비들이 입에서 마구 튀어나왔다.
-당신 말이야. 당신이 그런다고 내 모가지가 떨어질 줄 알았어. 당신
말이야! 내 처음부터 당신 알아보았어. 당신, 나 때문에 청장 못됐다고 날
씹고 모함했지. 이 새끼야! 청장 아무나 되는 줄 알아. 내가 청장이 안되었
다 해도 너 겉은 새끼는 청장 못해. 왜 이래 이 새끼야! 두고보자 했더니
어디 감히 내 앞에서 날 씹어.
급기야 사무실에서 해서는 안될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눈에서 퍼
런 불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문밖 비서실 직원들이 모두 듣고 있을 것
이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여차하면 주먹을 쥐고 삿대질하는 손
이, 나를 때릴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는 극단적인 분함으로 이성을 잃고
있었다. 목의 핏줄이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면서 도드라져 올랐고 얼굴이
흙빛으로 시뻘겋게 변했다. 그는 어디서 그처럼 어이없는 정보를 들었는
지 알 수 없었다. 맹세코 한번도 나는 그를 밀어내고 청장이 되겠다는 생
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청장 님, 고정하십시오.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청장 님 말
씀이 무슨 말씀이신 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저는 결코 그런 비열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 새끼! 어디서 시침일 떼? 너, 내 몰아내고 청장 되려고 공작한다는
거 내 벌써 다 알고 있었어. 왜 이래? 내가 병신 바보 천치인 줄 알았어. 너
밑에 내가 심어 둔 첩보원이 몇이나 되는 줄 알기나 해. 이 새끼야!
그는 지금 그의 비위를 폭로한 것이 나라고 지목한 것이다. 나는 더 이
상 그의 독아에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국가와 우리가

속한 사회에 봉사하겠다던 소박한 꿈을 중도에서 접을 수밖에 없었다.
-큰 인물이었는데 그만 아깝게 되었지요.
이영택이가 다시 문성의를 큰 인물이라고 말했다. 하마터면 나는 하이
에나가 사자가 되겠다고 여러 죄 없는 동물들을 마구 물어 죽인 자라고 말
하려다가, 대신 마음에도 없는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예에, 큰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살았으면 장관은 못돼도 이 정부에서
어쩌면 차관은 되었을 겁니다.
-맞습니다. 발이 참 넓고 로비를 잘했지요. 큰 인물은 단명하는 것 같
습니다.
그가 무어라고 더 말을 계속했으나 나는 건성으로 들어 넘겼다. 그리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내 방으로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 놈은 어떻든 죽은 놈이었다. 구태여 그가 한때, 내 고향 친구였고 고
등학교 동창이었으며 초등학생 강간으로 소년원에까지 갔다 온 형편없이
나쁜 놈이었다고 이영택이에게 이야기 할 필요가 없었다. 문성의 가족은
그로 인해 마을에서 쫓겨나다시피 인근 도회지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서
몇 년 후 그가 소년원을 나와 어느 대학에 다닌다는 소식을 인편으로 들었
지만 그가 일본 유학까지 다녀와서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
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나, 바로 내 직속 상급자로 화려하게 등장할 줄
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며 한동안 그가 진짜 내 고향친구라는 사실도 알
지 못했다.
다만 부산 청으로, 처음 그가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그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고향에서 쫓겨난 바로 그 문성의라는
사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출생지가
나와 동향임을 알고 그가 바로 그 문성의라는 사실을 알았다. 틀림없는 과
부 집의 망나니 문성의였다. 그러나 나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젊고 혈기
왕성하던 시절 한번쯤 누구에게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 인간이라고 했던가, 문성의는 자신이 췌장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죽기 한 달 전까지도 차관 로비를
하느라 줄을 찾아서 힘쓰는 자들에게 향연을 제공하느라 술을 엉망으로
마셔댔다. 췌장암이라는 병은 자각 증상이 죽기 한 달 전쯤에야 나타나 전
혀 손을 쓸 수가 없고, 숨이 넘어 가기 전까지는 의식이 또렷하다고 한다.
죽기 전까지 의식이 또렷했을 문성의는 죽으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는
지 궁금하다.
14박 15일의 아프리카 긴 여행이 끝나고 귀국했다. 그로부터 상당한 시
일이 흘렸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좌절과 분노와 심한 정신적인 공황
에서 벗어나, 다시 나의 정체성을 찾았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김 사장이
무심코 사자의 생태를 설명하면서 했던 말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마사이라마를 떠나는 길에 마지막으로 사자를 찾으려 나섰다가 새끼
거느린 코끼리에게 쫓겨 덤불 속에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오는 삼십
여 마리의 사자 떼를 만났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김 사장의 말이 거짓이
아님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그제 저녁과 마사이라마를 떠나던
당일 아침까지도 풀이 죽어 있던 김 사장이 되살아났다. <거 보라는 듯이>
기고만장해서 활기 찬 목소리로 사자에 대한 희박한 지식을 다시 늘어놓
기 시작했다.
-사자 말입니다. 자기가 백수의 왕이라고는 하지만 코끼리 앞에서는
꼼짝도 못합니다. 그리고 겉으론 늠름해 보이지만 야비하기 짝이 없어요.
하이에나처럼 자신이 사냥을 하지 않고 치타나 표범이 사냥한 것을 중간
에서 가로채기도 하는 게 사자니까요.- (2002.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