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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1998년 [시-박명자]무명 수건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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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mloe
댓글 0건 조회 2,295회 작성일 05-03-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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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빛나는 것은 모두 뒤에 버리고
다만 가슴속에 무명 수건 한 장 품고 갑니다

그대 눈물 그대 한숨 흠뻑 받아 마시는
무명 수건 한 장 안고 갑니다

계곡의 늦가을 달빛이 슬금슬금 뒷걸음치는
어스름녘에 징검다리 징검돌 밟고 가겠어요

절실한 말은 될수록 삼가하고
침묵의 눈빛만 닦고 가야지요

계절이 지나가며 떨리운 낙엽 한장 한장 즈려 밟으며
가을 깊숙히 허무의 날개 감추고 싶어요

깊은 계곡 낮은 자리 낮은 징검돌에 발을 옮기며
이 가을 끝에는 더욱 겸허의 옷깃 여미고 싶어요

풀벌레들이 수염 끝을 떨면서
주둥이를 숨기는 늦은녘에 달빛 따라
계곡 깊이 낙엽 밟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