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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6년 [수필-서미숙] 세상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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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73회 작성일 07-02-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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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든 어디든 밖에 나갔다 오면 주방부터 들어간다.
손을 주방에서 씻는 습관이 들다 보니 손 씻으면서 아예 아이들이 담가놓은 설거지를 시작하는 것이다.

언젠가 강의를 듣던 교수가 자기네 집은 일주일에 한번 걸레질을 하고 김치를 담그는 방법을 몰라 고추장에 버무려 먹었단다.
아무리 교수라지만 속으로 욕했다.
“세상에 더러워라” 그리고 고추장 김치,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나는 김치를 사먹어 본적은 없었다.
워낙에 성격이 까다로워 밖에서 사먹는 음식도 싫어한다.
그러나 요 근래 나도 김치를 사봤다. 우연히 홈쇼핑 눈요기를 하다 하루만 특가 세일을 한다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여 샀다.
딸아이가 놀라며 하는 말 “엄마가 김치를 다 사먹다니 엄마 많이 힘들어?” 한다.

그래 요즘은 정말 힘들다 호구지책으로 뛰다 보니 살림할 겨를이 없다. 그렇다고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김치를 볼 때 마다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
올 여름 몇 년 만에 동생이 피서를 왔다. 집을 들어서자마자
“세상에, 세상에~ 언니 집이 이게 뭐야? 사람 사는 집 맞아?” 집이 왜 이 모양이냐고 그전에는 뽀득뽀득 윤기가 났던 살림살이
들이 엉망이라면서 연신 “세상에, 세상에” 하면서 자기 신랑한테 언니가 이렇지 않았는데 언니가 이상하다고 한다.
그래 이상하게 살았다. 정말 힘들게 네가 내 사는 것을 아니 모를 거다. 살림 할 새가 어디 있어 안 그럼 당장 굶어 죽을 판인데
속으로 외쳤다.

예전 같으면
지문이 없어지도록
쓸고 닦은 내 살림살이들
언젠가부터 나뒹굴어져 있다.
발 딛으며 끈끈한 액이 달라붙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쓰윽 저만치 밀어내고
잊은 듯 먼 산 바라본다.
그 시간 예전 같으면
윤이 나게 번쩍거릴
내 살림살이들이
어느 구석에선가 썩어가고 있었다.

몇 년 전 여름날이 생각났다.
갑작스런 IMF 보다 더 힘든 경제 상황이 되고 있었을 때.
여기저기 너도나도 힘들단 소리일 뿐.. 그저 돈, 돈 소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로또 열풍에 억대 부자가 되는 횡재도 누려 보던 만, 나는 그런 행운은 없는지 하면서
한숨만 내쉬고 있는데 아는 동생이 와서 저를 좀 도와 달라고 했다.
자기가 일을 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날보고 아르바이트 좀 하라고…
좋지 돈 번다는 데 싫다는 사람이 있나 하고 쾌히 승낙을 했다.
재주가 재주인지라 그림 그리는 일은 자신이 있었다.
서울에서 유행하는 헤나(인도에서 유행하는 것으로 사람에게 무해한 염료로 몸에 여러 가지 꽃, 나비 용 등의 그림을 그려주는 것)
를 하자고 해서따라 나서 보았다. 사람들은 그 힘든 상황에도 뜨거운 뙤약볕이라 그런지 피서객들로 바닷가는 미어졌다.
장사가 될 것 같다며 동생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폈다.
재미삼아 돈을 번다고 따라나선 것이 이 나이에 무슨 짓인가 하고 조금 창피한 것은 사실이었다.

‘누가 보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과 ‘뭐 어때? 그림 그려서 조금 수입 잡자는 건데, 그리고 아는 동생이 하도 간청해서 도와주는
것이라고 핑계를 되지 뭐…머리 속은 아는 사람 만나면 변명을 할 이 궁리 저 궁리로 가득 차 있었다.
동생은 “헤나 하고 가세요.” 하면서 사람들을 모아 대고 있으나 난 남의 일 보듯 피서객들과 오랜만에 본 바다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바람에 풍겨오는 바다 비린내, 짝짝이 여름을 즐기는 연인들의 진한 포즈, 젊고 아름다운 몸매들, 그 속에 한숨짓는 나, 물 속에서
풍덩거리고 노는 아이들,온몸에 모래찜질을 하는 사람들, 내가 왜 누굴 위해서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가?
저 바다를 즐기러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갑자기 슬퍼지고 바다가 싫어지기까지 했었다.

사람들은 모여들지 않고 몇 시간이 흘러 괜히 나왔다는 후회와 짜증이 더해 갔다.
집에서 애들 밥이나 챙겨줄 걸 하는 후회가 되었다.
멀쩡하게 차려입고 나와 핫도그 ,핫도그 하면서 소리소리 지르며 파는 아줌마에서 학생들의 모습들. 젊은 아이들도 말쑥한 모습들로
시원한 냉차와 김밥에다 들고 나와서 팔려고 서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뭔 사람들이 저런 장사를 하나 싶어 물어 보니 수입이 너무 괜찮아 다들 저렇게 한철 장사를 한다고 창피한 것이 문제냐고 하면서
심지어는 떡볶이, 자장, 별게 다 나오는 바닷가. 예전에 아는 언니가 서울서 날보고 김치를 맛있게 담근다고 해수욕장에 가서 한 봉 다리 씩
담아서 팔면 돈 벌겠다고 하자고 조르던 기억이 아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도 나오고 그들을 넋을 잃고 바라다 보다 이상하게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 김밥, 김밥 하면서 외치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정말 닮아도 어찌 저리 닮았나 하고 동생인가 언니인가 하고 그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사람도 나를 보듯 하더니 피하면서 저리 가곤 다시 와선 눈이 나와 마주쳤다.
서로 깜짝 놀라서 보다가 상대가 어휴 하더니 창피한 듯 가는 거 아닌가?
세상에 친구였다.
“야 뭐야~” 했더니 “아이!” 하면서 멀리 가버리더니 다시 와선 날보고 오라고 손짓을 했다.
같이 나온 동생에게 창피하다고 하면서
“여기 왜 나왔어? 뭐야”
“응 나 이거 장사해”
“아니 언제부터”
“응 하조대에서 했는데 오늘은 여기 나왔는데 하필 널 여기서 만나니”
“세상에 이걸 왜해?”
“그냥 아이 학원비 벌려고” 신랑이 돈 잘 벌어 주는데 기가 막혔다.
“야~ 아무한테 말 하지마” 하면서 그 친구는 김밥을 먹어 보라고 싫다고 하는데도 두 줄을 썰어 주면서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도 그 눈물을 받아 눈시울이 시큰둥하였으나 애써 모르는 척 했다.
“야~ 나도 해볼까 수입이 짭짤하다며”
“그래 재미있어 참 재미있어 우리 딸 공부 잘하니 학원 하나 더 보내보려고 하니 벅차서 한철 장사고 해서 나섰다.”
“그랬구나, 돈 벌면 좋지 뭐”
그래 그 집 딸이 학교 반장이다 늘 벌이에 나서서 바쁘게 산다 했는데,
동네일도 다 보고 다니고 선거다 뭐다 다 나서고 다니는 친구이건만 마음이 짠했다.
그 친구가 다시 보이기도 하고. 강한 의지력과 자식을 위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조그마한 일을 하려고 노동도 아니고 그 손끝으로 조금 움직여 벌어보려고 했던 나, 그것도 창피한 생각에 빨리 접자고 졸랐던 나,
늘 편안함으로 살아왔던 나, 요즘 나도 힘이 들어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더 알아보려고 했는데, 저렇게 다들 산다며 동생과 이야길 나누며
“우리도 내년엔 해볼까 나 하나도 안 창피해” 했다.

“우리도 속초사람 다 되었네 그래 바닷가 사람 다 되 가고 있다.” 하고 웃으면서 그 곳을 빠져 나왔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이렇게 작은
바닷가에서도 펼쳐진다는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더구나 그 친구로 인한 나의 아이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자식이 뭔지 그렇게 열 달
힘들게 낳아서 키우려고 고생하고 그 아이를 위해서 좀 더 현실을 편안하게 살려고 애쓰는 우리 부모들, 자신을 위한 삶의 고생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집에 돌아와 서울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막내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막내야~ 우리 내년에 핫도그 장사하자” “언니 뭐야 웬 핫도그 더워죽겠는데 그 더운 핫도그 얘긴 왜 해 끊어 ~끊어” 하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확~ 끊어 버렸다 바쁘다나 뭐라나 우리 딸한테도 “우리 내년에 엄마랑 핫도그 장사할까? 했다. “ 그거 돈 많이 번단다. 너 맨 날 용돈 많이 달라고
하잖아 응?” 엄마가 도대체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고 귀찮은 듯이 날 빤히 바라다보며 “엄마 왜 그래요? 도대체 어디 다녀왔어요?” 한다.
“그래 너 가 무슨 소리인줄 알겠니? 너를 위해서 난 오늘도 돈 많이 벌 궁리를 한단다.”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게 혼자의 중얼거림으로 나의 아르바이트는 끝나고 말았었다.
우리 모두가 사는 방법은 다르지만 그 누구나가 힘든 자신만의 십자가는 지고 사는 것 같다. 그 십자가를 버리려 할 때 버겁고 힘들고 그렇다.
그러나 초연하게 받아 들여 잘
견디며 산다면 늘 우리 앞엔 행복이라는 글자가 보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난 집안을 청소 했다. 온 몸이 쑤시지만 무언가 잊고 살았던 나를 다시 찾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