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6호2006년 [수필-이은자] 거지태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20회 작성일 07-02-26 17:26

본문

사람이 사는 동안 즐거워하는 시간보다 근심걱정에 눌려 사는 시간이 더 많다고들 한다.
근심의 근원을 캐고 들어가면 욕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욕심을 우리는 생을 멋있게 할 수 있는 욕망 내지는 야망이란 말로 위장한다.

― 마음을 비워라 ―
― 모든 욕심을 내려 놓으라. 자족하는 자 행복을 맛보리라. ―

자주 듣는 말이고 진리임에 틀림없다.
나도 그 진리를 따라 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온갖 우수사려를 한 짐 잔뜩 지고 걷다가 세월을 낭비했다. 생활 일선에서 물러선 지금에 와서, 그런 나를 저만치
객관화시켜 보려 애쓰다보면 어릴 적에 자주 보던 한 사람이 생각나곤 한다. 거지 태호…
그는 우리 마을 명물이었다.
추운 겨울 아침, 우리 집 정지 문간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사발을 들고 허겁지겁 먹던 그 모양을 떠올리며 나 혼자 쓸쓸히 웃곤 한다.
함경도에서는 양력 11월이면 얼음이 언다. 겨울이 긴 고장이다. 그 곳 집 구조는 추운 겨울을 살아내기에 알맞게 지어졌다. 대문에서 한참
들어와서 부엌 정지문이 있다. 현관문 같은 구실을 한다. 정지에 잇대어 정지간, 윗방, 뒷방, 골방이 붙어있다. 정지에는 바닥에 물독을
묻어놓고 벽을 돌아가며 시렁이 매여있다.방 쪽으로 화구가 두 세 개 있고, 그 위에 솥을 걸어 취사와 더운물과 온돌을 덥히는 것이다.
부엌과 정지간 사이에 유리로 미닫이문을 단 집도 있지만 대부분 집들은 그냥 터 놓고 산다. 정지는 안방이기도, 거실이기도 한 셈이니까.
그 때 우리 집은 할머니 삼촌 고모들과 숙모 두 사람까지 대가족이 한 집에 살았다. 밥 때면 잔치집 같았다.
몹시 추운 아침 싸리비 자국이 정갈한 우리 집 마당을 밟고 오는 첫 손님 태호, 그는 대문을 밀고 들어와 정지문 고리를 철커덕 철커덕 노크한다.
어머니는 확인해 보지도 않고 문을 연다. 태호는 한 가마니 가득 짐을 진 채 서 있다. 어머니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면 그 짐을 문 뒤에 내려놓고
봉당에 들어온다. 쭈구리고 앉아서 문을 한 두뼘 열어서 잡고, 제 앞에 놓인 쪽상과 짐을 번갈아 살핀다. 할머니가 고함 지른다.

“찬바람 들어온다. 문 꼭 닫고 먹어라―”
그러면 태호는 국사발에다 밥을 엎어서 손에 들고 밖에 나가 먹는다. 자기의 짐 때문이다. 그새 누가 가져갈까 걱정이다.
“대문 안에 것 누가 가져간다고 그러냐. 문 닫고 들어와 천천히 먹어라.”
소용없는 말이다. 태호는 허기를 채우는 일만치나 그 짐을 지키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태호가 사는 곳은 남산 중턱에 뚫려있는 굴이다. 남산은 기차길이 그 허리를 따라 지나가고 큰물이 구비구비 돌아가는 곳이다.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이다. 먹을 때만 마을로 내려오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 굴 속에서 보낸다. 그 속에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슨 책을 본다더라 소문만 떠돌았지 그건 추측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태호가 공부를 너무 열중하다 미쳤다느니, 독립운동 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혀 고문당해서 실성했다느니 하기도 한다.
그 소문이 모두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별로 말이 없다. 얼굴은 둥글고 눈매도 평온하다. 키는 보통사람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살집이 있어 튼실하다.
비록 누더기 옷을 입었어도, 팔뚝이며 허벅지가 벌겋게 내비쳐도 당당하고 우람해 보인다.

아이들은 거지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태호를 무서워하는 아이는 없다. 간혹 양지쪽에 제 짐을 기대고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재미있어 하며 볼 때도, 아이들은 판을
걷어 도망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해꼬지 한 일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태호가 정색을 하거나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화를 내는 일이 딱 한가지
있다. 자기의 짐을 누가 넘본다 싶을 때다.그 짐은 태호의 생명처럼 지켜내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그 가마니 속에 있는 것들은 사금파리,
유리조각, 쇠조각, 물매돌 등등이 전부다. 늘상 밥을 먹여 주는 우리 할머니에겐 보여준 모양이다. 쌀 한 가마니는 80㎏쯤 된다. 웬만큼 힘쓰는 장정이라도 메고
다니긴 어려운 무게다. 태호의 짐 한 가마니는 쌀에 비교하면 훨씬 무게가 나가는 것들이다. 자기 굴속에 놓아두고 홀가분하게 마을로 내려와도 될 터인데 태호는
그걸 못 한다. 십리나 되는 길을, 아니 허구헌 날 벌받는 사람 형국으로 그 가마니를 메고 다닌다.
네거리에 풀어헤쳐 놓는다 한들 아무도 집어갈 물건이 아닌데도 태호는 놓지를 못한다. 누가 무어라 해도 그 보물을 포기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나도 저만치 내 살아온 길목을 거슬러 회상하건대, 설교를 듣고 팡세 따위의 책을 읽어도 내 속의 나는 요지부동이었다.
그 충고들은 모두 내 안에 걸려있는 등불일 뿐 당장 내 삶을 바꾸지는 못하였다. 내 힘이 다 소진되었을 그 때까지.태호를 미쳤다고 했다. 그는 분명히 광인이다.
그의 짐은 너무 무거웠다. 아무도 그 짐을 놓아두게 할 순 없었다. 그리고 나누어 질 수도 없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잠 못 이루는 밤이 있다. 악몽에서 깨어나는 밤,
울다가 내 울음에서 깨는 밤이 있다.
내 무의식 저 끝간데 없는 곳에서 지고 가는 짐이 있기 때문이리라.

죽어야만 낫는 병, 집착 성서에선 끊임없이 타이른다.

― 네 짐을 십자가 밑에 내려 놓으라. 그 분이 대신 져 주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