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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6년 [소설-강호삼] 도플러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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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4,267회 작성일 07-02-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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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에 <열차가 방금 전 역을 출발했습니다.>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멀리서 희미하게 전
철의 쇠바퀴가 레일 위를 구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파장이 플랫폼 앞 방향에
쌓이면서 소리가 점점 크고 가까워졌다. 이윽고 전동차의 불빛이 보이고 전동차가 역 구내
로 진입하면서 전동차의 소음은 굉음이 되었다. 끼이익-하는 제동소리가 보태졌다. 전동차
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꾸역꾸역 내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듯 안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플랫폼이 텅 비였다. 문이 닫히고 전동차가 천천히 움직이다가 이내 속
력을 올렸다. 전동차의 꼬리가 보이는 가 했더니 이내 사라지고 레일 위를 구르는 전동차의
소리도 순식간에 멀어져 들리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플랫폼으로 들어선 다음 전동차 때였다. 노숙자가 분명해 보이는 늙은

사내가 노란 선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서고 있었다. 잠깐 미적거리는 것 같더니 이내 늙은
사내의 몸의 중심이 선로 쪽으로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전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은 지금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아연하고 황당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뒤쪽으로 한 프레임씩 천천히 돌려보세요.>

영상이 뒤로 천천히 물러나면서 2.3미터 앞 쪽, 전동차의 앞머리가 보이고 급하게 제동장치
를 조작하는 지하철 기관사의 당황한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좀 더 뒤로 돌려 보세요.>

다시 주위의 사물들이 뒤로 물러나고 플랫폼에 서 있던 많은 사람들도 종종걸음으로 뒷걸음
질 처서 계단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잠깐, 거깁니다. 거기서 멈추고 앞으로 돌리세요.>

계단에서 정지했던 영상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계단을 빼곡히 메운 사람들이 마치
물결처럼 굼실거리며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퇴근시간이었고 2호선과 3호선에서 내린
사람들이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한꺼번에 플랫폼으로 몰려드는 중이었다.

<잠깐, 거기서 다시 멈추세요.>

화면에서 그림이 멈췄다. 계단을 막 내려온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려는 찰나의 정지화면이
다. 몇 사람의 얼굴은 정면으로 보였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도에서 30, 50, 70도의 각
각 다른 각도로 뒷모습이나 옆얼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앵글이 고정된 카메라가 플랫폼
양쪽 천정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 맞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앞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죠그 서틀의 조작에 따라 이번에는 종종 걸음으로 사람들의 앞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정지했
다. 노이즈가 심해서 사물의 윤곽이 흐릿하고 뭉그러져 화질이 좋지 않았으나 사람을 식별
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조금 더 확대해 볼 수 있겠습니까?>

커서가 움직이는 데 따라 화면에 대각선으로 사각형의 점선이 만들어졌다. 키를 누르자 한
사내의 모습이 사각형 점선 안에서 확대되어 돌출되듯 앞으로 다가왔다. 컴퓨터 조작자가
커서를 도구 상자로 가져가서 영어로 <sharp>라고 된 글자를 클릭 했다. 뭉그러진 색깔의
경계가 선명해졌다.

아까 플랫폼에서 전동차에 뛰어들던 거지 행색의 늙은이가 틀림없다. 아무렇게나 자랄 대로
자란 머리칼은 칙칙한 회백색이었다. 두 눈은 뒤로 들어 가 퀭하고 뺨이 홀쭉하고 창백해서
어둡고 음산한 느낌이었다. 예순, 일흔? 어떻게 보면 여든도 더 되어 보였다. 한쪽 다리를
끌면서 한걸음, 한걸음 간신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 사람이 틀림없지요?>

<그렇습니다. 틀림없습니다.>

<다시 되돌려서 처음부터 틀어 보십시오.>

테이프가 되감기고 카운터 제로 표시가 나오자 자동으로 멈추었다.  모니터 화면에 그림이
처음부터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플랫폼이 휭 하니 비었다. 바로 조금 전에 도착한 전철이
플랫폼에 있던 사람을 모두 싣고 갔다. 이내, 이 쪽 저쪽 계단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
하면서 다시 개미떼 같이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가득 메우며 플랫폼으로 몰려들었
다.

<이상, 거기까집니다.>

커서가 <일시 멈춤> 표시를 누르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계단으로 내려오던 그림에서 그림이
다시 정지했다. 늙은 사내는 자칫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이 자세가 불안정했다. 누가 보아
도 대 테러 용의자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경찰로서는 때가 때이니 만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경찰은 전국에 갑호 경계령을 내려놓고 있다. 특히 공항과 항만, 각국 대사관과 주요 건물
의 경비가 철통같이 강화되었다. 이라크 전쟁 후 전 세계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미
국. 영국. 호주. 인도네시아. 스페인. 이태리 등,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불특정 다수
를 향해 계속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로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한 나라들 대상이
다. 한국도 삼천 명의 쟈이튠 부대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하고 있다. 인터폴의 협력을 받아
수상한 자들의 입국을 막고 있지만 언제 무슨 일이 돌발적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이미 한국도 알카에다 조직으로부터 군대를 철수 하지 않으면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받았고 무고한 젊은이가 이라크에서 처참하게 생목숨을 잃었다.

<지금부터 이 늙은이가 어떻게 이 지하철역까지 왔는지 철저하게 수사해주십시오. 지문 조
회는 나왔습니까?>

<예, 나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수사반장이 방금 컴퓨터 프린트에서 빠져나온 서류를 직원으로부터 넘겨받았다. A4 용지
상단에 지문과 흑백 인물 사진이 있고 그 아래로 학력과 자세한 경력이 나열되어 있었다.
서류를 받아 든 수사반장이 의외라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정말 저 늙은이의 지문조회가 맞습니까? 뭐가 잘못된 거 같은 데 다시 확인해 보십
시오.>

<틀림없습니다. 조회결과가 그렇게 나왔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어떻게 저런 늙은 거지가 정부 중앙부서의 고급공무원이었단  
말입니까?>

<지문조회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모니터에 확대된 늙은 거지의 그림을 다시 쳐다보면서 수사반장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아무
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하긴 상식적으로 얼른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현대사회
가 아무리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불확실하지만 정부 중앙부서의 고급 공무원이
었던 자가 퇴직한지 8년 만에 지하철의 노숙자로 전락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세월은 고급공무원은 말 할 것도 없고 말단 세리나 순경도 갈퀴로 돈을 긁어모아 졸부
가 되기도 하고 그룹회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 중앙부서의 2급 고급공무원이었던 자
가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면 융통성(?)이 없었거나 아주 무능했거나 두 가지 중 한가지
일 것이다. 수사반장은 다시 처음부터 늙은 사내의 인적사항을 읽어나갔다.

요약하면 늙은 사내는 1937년 9월 28일, 중국에서 조국 광복운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의해
사망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만주에서 출생했으며 해방 후 귀국해서 부의 고향인 경남 김
해로 환향. 대학 2년을 중퇴하고 1963년 행정고시 합격. 내무부 행정사무관으로 임용. 서기
관으로 승진하면서 문교부로 전보했고 1967년 초등학교 교사인 장의주와 결혼. 일본과 미
국 대학에 각각 유학한 딸과 아들이 있고 부인과는 7년 전 사별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일단 늙은 사내는 지문조회로 테러나 보안사범의 용의 선상에서는 제외되었으나 수사반장은
노숙자치고는 너무나 특이한 경력을 가진 늙은 사내를 다른 각도에서 주목했다. 미국 대학
에 유학까지 시킨 성장한 딸과 아들이 있는 늙은이가 노숙자로 거지가 되어 거리로 나앉게
된 데에는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늙은 사내의 구체적인 행적을 알고
싶었다. 여기에 수사반장의 개인적인 호기심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대 테러 용의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사십 시간 전, 행적 조사한 파
일 준비됐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수사반장은 파일을 넘겨받고 의자로 돌아가 파일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늙은 사내가 잠을 자기 위해 지하철역에 나타난 시간은 정확하게 40시간 전 새벽 한 시, 마
지막 전철이 떠나고 밖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지하철 출입구들이 공익요원들에 의해 모두 닫
힌 시간이었다. 서터가 내려져 있었으나 매표구가 내려다보이는 계단 바깥쪽이었다. 늙은
사내가 불편한 왼쪽 발을 끌면서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왔다. 내려진 서터 앞에서 잠시 걸
음을 멈추고 매표구 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매표구 안은 출입구에서 멀어 상대적으로
덜 춥지만 서터가 내려져 있었다. 그나마 출입구 계단과 각도가 꺾여 밖으로부터의 한기가
직접적으로 덜 닿는 외진 좋은 자리에는 이미 다른 노숙자들이 먼저 차지해버렸다.

늙은 사내는 두리번거리다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선 자리에서 그대로 옆구리에 끼고
있던 삼양라면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길이대로 박스를 벌려 놓은 뒤,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옆으로 몸을 구부려 힘겹게 박스 위에 앉았다. 힘이 부치는 듯 앉은
자세 그대로 한참 있다가 이윽고 쓰러지듯 옆으로 몸을 뉘였다.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이
기 위해 구부릴 수 있는 대로 몸을 구부린 뒤 앙상한 손을 허우적거리며 라면 박스와 함께
가져 온 타블로이드 판 무가지 신문을 몸 위에 여러 겹 덮었다. 그것으로 살을 파고드는 매
서운 추위를 이겨내기란 턱없이 부족하다. 이내 시멘트 바닥의 한기가 라면박스를 그대로
관통해서 뼈 속으로 스며들었다. 게다가 올려다 보이는 출구에서 겨울 한기가 가파른 계단
으로 마구 굴러 내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끊겼으나 지하철역과는 달리 지상에는 지금부터가
더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서울은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세상이 되
었다. 서울의 밤은 지금부터 성시다.

지하철 2번 출구에서 바로 안국동 쪽으로 꺾어지는 골목, 길 양쪽으로 나이트클럽과 카페,
모텔과 24시간 편의점과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전면이 트인 통 유리창 안으로 술을 마시거
나 야식을 즐기는 남녀들이 무언가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
자의 나신이 네온 간판으로 번쩍거리는 나이트클럽 옆 후미진 골목, 이십 전후의 파랗게 젊
은 여자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토악질을 하다가 바지도 벗지 않고 그대로 오줌을 누고 있
다. 여자의 양 허벅지가 젖어들면서 허연 수증기가 피여 올랐다.

같은 건물의 이층 모텔, 조금 전 나이트클럽에서 눈이 맞은 중년의 유부녀와 유부남이 카드
키로 객실 문을 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오늘 처음 만났다. 남자도 일행이 있었고 여자도
일행이 있었지만 모두 짝을 지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객실의 문이 열리자 여자가 안으로 들어서면서 제 집처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옷을 훌훌
벗어 제쳤다. 브래지어와 팬티까지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자 남자도 빠르게 옷을 벗고 이미
잔뜩 고개를 치켜든 물건을 덜렁거리며 여자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자의 오줌 누는
소리가 나고 두 사람이 킬킬거리며 사워를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떡메 치는 소리와 함께 여
자의 숨 가쁜 교성이 화장실 밖까지 새어나왔다.

지하철 반대편 출구에서 백 여 미터 거리, 새로 말끔하게 정리된 청계천에 이름 그대로 맑
은 물이 제법 개울물 소리를 내며 흘렸다. 하루아침에 청계천이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 좋
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한 남녀들이 팔짱을 끼거나 서로의 어깨를 껴안
은 채 밝게 웃으며 천변을 거닐고 있다. 현란한 조명으로 치장한 천변 양쪽으로 새로 들어
선 카페의 트여진 유리창 안에도 남녀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먼 이
국의 동화 속 풍경 같다.

여기, 바로 이 청계천 변, 동족상잔의 비참한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의 50년대와
60년대, 미얀마나 캄보디아, 베트남의 수상가옥처럼 나무와 미군의 C레이션 종이상자로 얼
기설기 엉성하게 지은 더러운 판잣집이 밀집해 있었음을 이들이 알리 없다. 시커멓게 고인
수면 위에 똥 덩이가 그대로 떠다니고 물 아래서 가스가 뽀글거리며 올라와 하루 종일 악취
를 풍겼던 사실은 더더욱 알지 못한다.

한 끼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창녀생활을 하며 누렇게 얼굴이 떴던 그들의 엄마, 온 종
일 지게 품을 팔아도 굶주린 가족들에게 좁쌀 한 봉지를 살 수 없었던 그들의 아버지가 이
곳에 살았음을 알리 없다. 어떻게 이들이 당시의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배고픔의 비참함
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이제 그렇게 앞 사람들이 절망과 굶주리며 전쟁의 폐허에서 일궈 놓
은 풍요가 거기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굶주려도 내 자식만은 반듯하게 키우겠다는 그들 엄마와 아버지의 소망이
오늘에 이르러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왕자와 공주들을 대량으로 양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들 배고픔을 모르는 자식들은 자신들을 낳아 준 어미의 자궁을 심판하면서
구세대니, 보수꼴통이니, 기득권 세력이니 하면서 마구 칼질을 해대고 있다. 누구에게 책임
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이 자리 잡고 웅크리고 누운 지하철 입구 계단으로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느리고 둔
탁한 걸음 거리다. 경사진 출입구 천정 때문에 계단의 중간쯤에서, 먼저 앞이 벌어진 먼지
투성이 구두가 보이고 다음으로 다리와 몸뚱이가 차례대로 나타났다. 사내는 때가 타서 앞
섶의 겉감이 반질반질한 회색 오리털 점퍼 차림에 귀와 뺨이 덮이는 모자를 썼다. 6.25때
껭꽈리를 치며 인해전술로 물밀듯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오던 중공군과 같은 모습이다. 오
른 손에 반쯤 빈 소주병이, 왼손에는 안주와 술병이 든 것으로 보이는 비닐봉지를 들었다.
살을 에는 바깥 추위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취하도록 마신 술 때문인지 사내의 얼굴은 붉다
못해 흙빛이다. 나이는 사십대 후반이거나 오십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계단을 다 내려 선 사내는 몸의 균형을 잡으려는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스텐레스 서터
너머 아래 쪽 계단 저쪽 매표구를 일별했다. 그 다음 시선을 돌려 이쪽저쪽 널려있는 걸레
뭉치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새우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는 늙은 사내에게 시선이 미치자
사내는 곧장 그곳으로 가서 털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주병과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려놓
고 앉은걸음으로 늙은 사내에게 다가갔다.

“주무십니까? 주무시지 않으면 저랑 술이나 한 잔 하시지요?”

차림과는 달리 말과 태도가 정중하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비몽사몽 막 잠이 들려던 찰나였
던 늙은 사내가 무겁게 눈꺼풀을 위로 밀어 올렸다. 눈에 잠깐 반가운 빛이 떠올랐다. 이틀
만에 다시 만나는 얼굴이다. 늙은 사내가 구부렸던 허리를 힘겹게 펴면서 천천히 일어나 앉
았다.

“저녁은 드셨습니까?”

“술이나 한 잔 주게?”

근래 들어 저녁을 먹지 못한 것이 비단 오늘 하루만도 아니다. 점심 한 끼만은 어느 종교단
체에서 나와 급식하는 밥을 얻어먹었다.

파고다 공원과 그 주변 일대는 서울과 인근 교외에서 공짜 지하철을 타고 모여든 언제나 주
머니가 텅 빈 노인들로 항상 만원이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지하철역은
계단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온통 노인들이 점령해서 잿빛 수용소 같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려고 해도 결코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직장에서도 내 쫓기고 집에서도 내 쫓긴 돈 한
푼 없는 노인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엔간히 추운 날씨에는 공원 이쪽저쪽 삼삼오오 몰
려, 끝없는 담론으로 소일하다가 끼니때가 되면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는 것이 그들의 일
과이다. 늙은 사내도 매일 같이 하루 한 끼 먹는 식사를 그렇게 해결했는데 그나마 오늘은
그것마저 포기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슬그머니 줄을 이탈해버리고 말았다. 줄
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50여 년 전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발견했던 것이다.

여름 한낮의 햇빛이 작열하고 있었다. 서울 역 건너편 양동 쪽이었다. 사람들이 지금의 대
우사옥 빌딩과 남대문 경찰서로 이르는 길가에 구불구불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하나같이 굶
주리고 병든 사람들이었다. 지게꾼과 개피 양담배를 파는 좌판 노점상과 구두닦이, 아이스
케키 장수, 거지아이와 늙은 노인들이 그 대열에 있었다. 당시 스물 살의 청년이었던 늙은 사내도
그들 속에 끼여 있었다. 역시 기독교 단체에서 주는 국수 한 사발을 얻어먹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 원조로 준 멀겋게 푼 우유 물에, 역시 미국 잉여 농산물 원조로 뽑은 퉁
퉁 불은 몇 가락의 국수 가락이 전부였으나 그걸 얻어먹기 위해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어디서든 한 끼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웠고 일을 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
었다. 새벽 네 시 통금이 풀리자마자 숙박료 오원짜리 근로자 합숙소를 나와 노동시장인 남
대문 닭 시장 골목으로 가서 기다리려도 운 좋게 공사판으로 가는 사람은 몇 사람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시골에서 올라오는 학비를 기대할 수 없게 된 늙은 사내도 학교를 휴학하고 막노동
판에 뛰어 들었으나 그나마 차례가 오지 않았다. 얼마간은 청계천 헌 책방에서 책을 팔아
끼니를 이었다. 동대문 창신동 산꼭대기 달동네 판잣집 친구의 자취방 신세도 한계가 있었
다. 근로자 합숙소 숙박비 오원도 없을 때는 남산에 올라가서 밤이슬을 고스란히 맞으며 벤
치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 눈을 뜨면 온 몸이 누구에겐가 맞은 것처럼 무거웠다. 통금이 해
제되자마자 곧장 남대문 닭 시장으로 달려가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하기가 일수였다. 그나마
재수가 좋은 날에는 영화판의 엑스트라로 동원되는 행운도 있었다.

자신의 국수 받을 차례가 가까워지고 있는데 줄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멈추었다. 국수를 주
는 콘센트 가건물에서 사람이 나왔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준비한 국수가 다 떨어졌습니다.”

오늘처럼 그 날도 전날 저녁과 아침을 굶은 상태였다. 머리 위에서 햇볕은 여전히 뜨겁게
작열하고 있었다. 현기증으로 금시라도 핑그르 쓰러질 것 같은 발걸음을 어떻게 옮겼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참으로 전설처럼 아득했던 옛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젊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공동수도로 찾아가서 뱃속이 출렁거리
도록 물을 마신 뒤 2원짜리 전차표 살 돈이 없어 걸어서 명동의 국립도서관으로 갔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해서 그 길을 찾기 위해 배고픔을 참으며 책을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구차 하게 한 끼 밥이라도 먹으면서 생명을 이어갈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대신 그 때처럼 공원의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다. 심한 공복에는 물을 마시는 것
만으로도 견딜 만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늙은 사내가 물로 허기를 달랜 역사는 아주 어
릴 때부터다. 옛날 시골에 보릿고개라는 고개가 있었다. 실재하는 고개가 아니다. 가을 추수
를 한 양식이 봄이 되 기전에 떨어지던 시기를 말한다. 말려두었던 시래기와 막 돋기 시작
한 나물을 캐어 죽을 끓여 먹어도 양식이 모자랐다. 마을마다 봄이 오기 전에, 보리가 영글
기도 전에 굶어서 죽는 사람들이 나왔다. 그들의 평생소원은 오직 쌀밥을 배불리 먹어 보는
것이었다.

국민소득 이만 불 시대라고 하는데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 하루 품을 팔아 식구들을 먹
여 살리는 홀어미들이 사방에 그대로 방치된 채 굶주리고 있다. 정부는 공무원의 직급을 상
향 조정하고 장차관 자리를 수두룩하게 늘리면서 밤낮 예산타령이고 국민으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둬 쌀과 비료로 북쪽의 김정일을 먹여 살리고 노벨 평화상이라는 것 까지 받았다.
그 명분이라는 게 군사독재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총으로 정권을 탈취한 파렴치한
자들은 정권이 위태할 때마다 북쪽의 김일성이가 바로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국민들을 공포
에 몰아넣고 위협했다. 지금은 그 방법이 지능적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막기 위해, 그리고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 북한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시정의 잡배도 웃을 노릇이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라니, 약을 대로 약은 북
한정권이 공멸 할 것을 뻔히 알면서 핵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또 하나의 억지명분일 수밖
에 없다.

술을 보자 늙은 사내는 오랜만에 술이 마시고 싶었다. 사내가 비닐봉지 안에서 빵과 종이컵
과 오징어채를 꺼내 늙은 사내가 깔고 앉은 라면 박스 위에 놓았다. 빵을 짚어 늙은 사내에
게 주려다 말고 대신 소주병을 들어 종이컵을 술을 부어 내밀었다.

“빈속에 괜찮겠습니까? 이 빵부터 먼저 좀 드시지요.”

“괜찮소.”

늙은 사내가 술잔을 받아 그대로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랜만에 마셔보는 술이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빈속에 술이 들어가면서 불에 덴 듯 창자를 훑어 내렸다.

“오늘 이삿짐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무슨 캐쓸이라는 아파트였어요. 무려 120평이나 되는
데 식구라고는 달랑 네 식구 라고 하더군요. 가구는 전부 이태리 제이고 집안 살림이 온통
외제 일색이더군요. 내 참 더러워서 말입니다. 알고 보니 그 집 주인이라는 자가 나도 잘
알고 있는 놈이었어요. 그 자식 말입니다. 학생 때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밤낮 데모만
하다가 제적을 당했는데 세상이 바뀌니 그게 대단한 경력이 되어 국회의원이 되었어요. <대
한민-국...!> 하면서 축구로 시작된 포플리즘이 미군 탱크에 사고사 당한 여중생의 촛불 반
미시위로 전이되고 거기에 교묘하게 편승해서 아시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어이없이 정권이
바뀌지 않았어요. 정권을 잡고 보니 늙은이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한 끝에 보
수꼴통이라고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고 각 분야마다 나이 많은 사람을 개 몰아내듯이 얼토당
토않은 명분으로 몰아내고 이제 그것들이 우리사회에 신흥귀족으로 들어섰지 뭡니까? 그쯤
이면 알만하지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데모만 하던 머리 빈 친구들이 정치를 한답시고
하는 일마다 시행착오를 하고 있으니 나라가 이 꼴이고 국민들이 빈정거릴 수밖에요. 그래
도 나라가 망하지 않고 이만하게 굴러 가는 것은 말없는 다수가 묵묵히 중심을 잡고 있는
덕분입니다. 굶주림이 뭐고 밥이 어떻게 해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철부지들까
지 인터넷으로 선동하는 꼼수를 쓰고 북한의 훈수까지 받아도 나라를 자신들의 마음대로 할
수없으니 이제 보수꼴통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놈들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
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늙은 사내가 술을 마시는 사이 잠깐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내팽개쳤다. 갈증이 나
는지 병 채로 입으로 가져가 물마시듯 술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나이로 미루어 보면 사내도
386 세대다. 같은 세대인데도 사고하는 것은 정반대다. 아무리 민주화가 되었다 하지만 옆
에서 듣기가 겁날 정도로 현 정권에 대해서 거침없이 막말을 마구 뱉어냈다. 박정희나 전두
환의 군사독재 정권시절이라면 말 그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병신이 되거나 죽었을
것이다.

사내가 이삿짐이나 나르는 막노동을 할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어떤 연유로 인생의
막장이나 다름없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노숙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신상
을 숨기고 산다. 노숙자들은 저마다 다 말 못할 사정을 다 가지고 있지만 서로의 신상에 대
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묻지도 않는 것이 불문률이다. 사내도 자기 신상에 대해서 한마디
도 내 비친 적이 없고 늙은 사내도 마찬가지다. 그저 느낌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늙은 사내는 거푸 종이컵으로 소주를 석 잔이나 마셨다. 늙은 사내가 이렇게 술을 마신 것
은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사내가 술을 마셨다면 재직 시, 온갖 비위에서 결코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술이 들어가자 얼마간 몸이 훈훈해지는 것 같으면서 취기가 올랐다. 술병이
바닥을 드러냈다.

데모라는 말에 늙은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허벅지 쪽으로 손이 갔다. 허벅지 뒤쪽 무릎 위
10센티쯤에 총알이 관통한 흉터가 있다. 늙은 사내는 이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누가 기억해 주지 않아도 사내에게는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경무대라고 불렸던 지금의 청와대 앞길에서였다. 부근 삼청공원의 늙은 두 그루 벚나무에
벗 꽃이 한창이었다. 아카시아도 조만간 꽃을 피울 태세로 베이지 색으로 우유 빛이 도는
꽃망울을 키우고 있었다. 남산도 날로 싱그러운 녹색을 더하면서 자태를 뽐냈다. 참으로 아
름다운 서울의 봄날이었다. 아무 일만 없다면 누구의 입에서든 절로 당시에 인기가수 백설
희가 불러 유행하던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흘러  나올 것 같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그러나 서울 시민 아무도 오는 봄을 느끼지 못했다. 연일 3.15 부정선거 데모로 들끓고 있
는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이 참에 북쪽의 김일성이가 다시 쳐 내려와 전쟁이 일어나지
나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동족상잔의 전쟁이 끝난 지 10년 저편이었
지만 사람들은 그 잔혹하고 처참했던 전쟁의 악몽을 한 시도 잊지 못하고 살아왔다. 체제를
같이 하는 나라 안에서야 의견이 갈릴 수 도 있지만 이 나라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일
만은 없어야 했다.

오후 1시, 중앙청을 돌아 나온 학생 데모대 일진이 경무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누군가 <경무대로 가자!>고 외쳤다. 경무대로 가서 이승만 대통령 각하께 직접 이기붕 일당
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를 다시 하거나 하야를 하도록 건의하자고 했다. 지금의 늙은 사내
도 그 데모 대열에 있었다. 사내는 전 날, 종로 4가에서 몽둥이와 자전거 체인을 들고 갑자
기 나타난 깡패들의 습격을 받았으나 용케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학생들이 어깨동무로 스
크럼을 짜고 경무대를 향했다. 삼청동 입구에서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막았으나 이내
허물어졌다.

오후 다섯 시, 데모대가 경무대 앞까지 진출했을 때였다. 갑자기 <피융!>하는 소리와 함께
콩 볶듯 총성이 들렸다. 스크럼을 짠 학생들의 대열이 무너지고 데모대가 우왕좌왕하면서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학생들이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나 뒹굴었다.
늙은 사내도 총알을 피해 뛰다가 허벅지에 총알을 맞고 길가에 머리를 앞으로 박으며 고꾸
라지고 말았다. 경무대 앞에서만 183명의 학생과 청년 시민들이 경찰의 발포로 죽고 6000
여명이 부상했다. 서울과 대구 부산 광주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4월 25일, 관망하고 있던 전국의 27대학 교수 300여명이 <죽어간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
라>는 프랑 카드를 들고 서울 시가를 행진했다. 이튿날인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유당의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
다. 학생들은 독재정권에 맞서 나라를 구했고 나라를 구한 뒤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늙은 사내는 4.19혁명으로 새로 들어선 장면의 민주당 정부와, 특히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
한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취약한 대의명분을 세우기 위해 온갖 유혹을 다해 왔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총상이 치유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입주가정교사를 하는 등
고달픈 고학생 생활을 하면서 행정고시를 쳐서 공무원이 되었다.

왼쪽 허벅지는 아직도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45년 동안 별
불편 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단 한번도 자신이 4.19 혁명의 최선봉이었음을 밝히지 않았다.

사내가 술병을 들어 다시 종이컵에 술을 따르다 말고 술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술병을 바닥
에 내려놓았다. 사내는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무언가 두리번거리다말고 늙은 사내가 덮었
던 신문이 눈에 들어오자 시선을 모으더니 다시 신문을 집어 들고 흔들었다.

“어르신! 보세요. 이 새끼들 하는 짓 말이 예요. 도대체 이 새끼들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
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정잡배같이 쌍소리나 하는 싸움 닭 같은 새파랗게 젊은 데모꾼을
차세대 지도자 깜이라고 장관이라는 완장을 채워서 나라를 농탕치려고 하질 않나. 지편들도
하는 짓이 가관이니 의견이 맞질 않아서 싸움질들을 해요. 내 원 더러워서 이민이라도 가야
지 이놈의 나라에서 더 이상 산다는 게 치욕이 예요. 치욕이란 말입니다.”

사내는 계속해서 한참 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들다가 그대로 옆으로 픽 쓰러졌다. 이
내 코를 드르릉 드르릉 골기 시작했다. 늙은 사내는 코를 푸르르 골면서 세상모르게 널브러
져 자고 있는 사내를 연민의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해서 사내가 자신처럼 노숙자 신세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행동거지로 보아 대학
물을 먹은 지식인에 틀림없다는 생각이었다. 늙은 사내는 노숙하던 첫날에 사내를 만났다.
자신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남의 소유가 되어버린 자신의 집을 더 이상 찾아 갈 필요가 없었
다. 사내는 이미 자리 잡고 누운 노숙자들로 잘 자리가 없어 서성거리던 늙은 사내를 불러
서 자기 곁에 자도록 해주었다.

늙은 사내는 자신이 덮고 있던 신문지 몇 장을 나누어 사내의 어깨와 가슴을 덮었다. 비록
얇은 신문지지만 신문지를 덮었을 때와 덮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대단하다는 것을 늙은 사
내는 잘 알고 있다.

푸르르 코를 골면서 세상모르게 널브러져 자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다가 늙은 사내도 천천히
바닥에 몸을 눕혔다. 술을 마신 탓으로 추위는 조금 덜 한 것 같았으나 잠이 달아나버렸다.
잠이 오지 않자, 늙은 사내는 이미 돌이킬 수도 돌이킬 필요는 없지만 반추하듯 지난 세월
을 한 번 더 더듬는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행정고시를 합격하고부터는 모든 일
이 잘 풀렸다. 직장 상사의 중매로 초등학교 선생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연년생으로 딸과
아들을 낳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한 때 행복했었다.

늙은 사내가 막연하나마 어두운 그림자를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니
면서부터다. 대학입학이 출세의 필수요건이 되면서 명문대 입시경쟁이 치열해졌다. 나라 전
체가 입시전쟁의 광풍에 휩싸였다. 모든 것이 아이의 대학입시에 맞춰지면서 과도한 입시경
쟁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가정교육이나 인성교육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땅히
나무랄 일도 나무라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뒤로 나
자빠질까봐 눈치를 살폈다.

늙은 사내의 자식들도 그렇게 해서 간신히 대학을 가긴 했지만 대학을 입학하면서 공부는
아예 뒤 전이었다. 또래끼리 몰려다니면서 당구도 치고 게임 방을 드나들면서 담배를 피우
고 술을 마셨다. 권총을 몇 개나 차고 두 학년이나 유급을 하면서 학교에서 학사 경고가 날
라 오기도 했다.

늙은 사내는 무엇보다 연금대부로 충당한 대학등록금이 뼈를 깍듯 아까웠다. 그 돈은 그야
말로 늙은 사내에게는 피와 땀이었다. 이자만 없을 뿐이지 아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나누어
서 매달 갚아야만 하는 돈이었다. 자선단체의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등록금이 없어
서 남대문 노동시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굶기를 밥 먹듯 했던 늙은 사내에게 자식들의 그런
행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육년 만에 겨우 대학 졸업을 했다. 놀고먹는 대학공부였으니 취직이 될 리 없었다. 취직이
되지 않자 부모의 경제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늙은 사내의 강렬
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유학이라도 해야 취직을 해서 자기 앞가림을 하지 않겠느냐고
우겼다. 동물 세계의 어느 종(種)이나 어미와 새끼 사이의 사랑은 본능적이고 맹목적이게
마련이다. 대판 싸움 끝에 아내는 자신이 퇴직을 해서 그 퇴직금으로 딸은 일본으로, 아들
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했다.

자식들이 유학하는 사이 늙은 사내 부부는 스물두 평 주공아파트의 관리비도 부담이 될 정
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내가 참여정부의 정치장관과 교원 정년 단축문제
로 갈등을 빚으면서 사표를 내기 전에 유학을 마쳤다는 점이다. 귀국한 아들은 중소기업 규
모의 전자회사에 취직이 되었으나 일본으로 유학 한 딸은 처음부터 취직 할 생각은 하지 않
고 영화판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독립운동으로 낯선 땅에서 한 생애를 마감했던 할아버지가
그토록 증오했던 일본 사내를 만나려 현해탄을 들락날락거렸다.

이제 늙은 사내에게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퇴직하면서 연금도 일시금으로 타서 자
식들의 유학 은행 빚을 갚았다. 그 사이, 자신도 모르게 배속에 암을 키워 온 아내가 갑자
기 죽었다. 데면데면했던 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가 그나마 가까워진 것은 아내의 발병에서
임종하기까지의 짧은 기간이었을 뿐이다.

결정적으로 늙은 사내가 자식들과 의절하다시피 거리가 멀어진 것은 참여정부의 막바지 대
통령 선거가 시작되면서부터다. 누구를 사모한다는 조직에 가입한 남매는 인터넷으로 바람
을 잡으며 마치 사이비 광신자처럼 선거운동에 광분하였다. 히틀러나 김일성의 선동집회를
방불케 하는 모임이 도처에서 여러 형태로 벌어지고 있었다. 늙은 사람들은 무조건 보수꼴
통이며 타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 의도적으로 세대간의 편을 갈랐다.

그럴듯한 선동과 체면에 깊이 빠져버린 자식들마저 타기해야 할 기성세대로 서슴없이 자신
들의 늙은 부모를 지적하고 공격했다. 그들 부모들이 얼마나 어렵게 온갖 고통과 굶주림을
참으며 이 나라와 삶의 터전을 가꾸어 왔는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플랫폼으
로 들어오는 전동차가 아니라 플랫폼에서 멀어져 가는 전동차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선거가 끝나자 아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벤처기업을 차리겠노라고 아파트 담보로 은행
돈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제 늙은 사내에게 남은 재산은 아파트 한 채가 전부였다. 자
신이 죽고 나면 어차피 그들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은행에 아파트를 담보하고 돈을 빌려주었
다. 이자가 밀리기 시작하더니 은행에서 원금 상환을 독촉했고 급기야 차압이 들어왔다. 아
파트가 법원경매에 넘어가 있는 동안 수소문해서 아들을 찾았으나 이미 한 달 전에 미국으
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사반장이 파일에서 눈을 거두었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매우 심란한 표정으로 동영상 그
림을 조작하고 있는 부하직원 쪽으로 다시 얼굴을 돌렸다.

<그거 아까 장면부터 이어서 다시 보여 주십시오.>

계단을 내려오던 사람들에서 멈추었던 그림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계단을 내
려와 플랫폼에서 줄을 서거나 플랫폼 앞쪽으로 갔다. 이윽고 바퀴가 레일 위를 구르는 소리
와 레일의 이음새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불빛과 함께 전동차가 들어오고 있
었다. 바로 그때였다. 늙은 사내가 발을 끌면서 사람들 앞으로 나서면서 노란 선을 넘어섰
다.

조금 전, 죠그 서틀로 한 프레임씩 천천히 돌리면서 보았던 그 장면이다. 한 프레임씩 끊어
서 보았을 때 사내는 잠시 주춤거리는 것 같이 보였으나 실제 사내는 조금도 주저 없이 레
일 위로 몸을 던졌다. 화면에 기관사의 당황하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너무나 순식간에,
갑작스럽게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기관사는 미처 제동을 걸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전동차의 앞부분이 늙은 사내 몸 위를 그대로 통과했다. 다음 순간 <끼이익->하는 굉음과
함께 전동차 바퀴가 멈춘 체 그대로 끌려가면서 바퀴마다 레일과 마찰을 일으켜 쇳가루 불
꽃이 마구 튀었다. 가까스로 전동차가 멎었다. 잠깐 동안 짧은 정적이 감돌았다. 그때까지도
플랫폼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
사람이 죽었다고 소리치자 그 제서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동차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레일 위로 뛰어 든 사내를 확인하기 위해 전동차가 앞으
로 움직여 레일 위를 비웠다. 비워진 레일 위로 전동차 바퀴에 머리가 완전히 으깨어진  늙
은 사내의 걸레 같은 몸뚱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를 수습한 당국은 늙은 사내의 시체를
무연고자로 처리해 가매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