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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6년 [시-신민걸] 海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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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92회 작성일 07-02-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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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하찮은 일생의 번뇌를 모조리 담고도 종지부를 찍지 못해
제 낮고 깊은 속속들이 다 펼쳐 보이는
파란만장 대하소설

팔방으로 그물 펼쳐 끙끙거려 끌어내면
한바탕 세차게 지껄이지도 못하고 금세 죽어버리는 멸치처럼
가까스로 연명하는 여린 중생의 대대로 측은하고도 무거운
낡은 아우성 같은 줄거리

젊은 날 한때 요동치던 격정의 찌끼마저
어느덧 차분히 가라앉아 버린 바다 깊은 저 먼 바닥
언뜻언뜻 보이는 지붕 낮은 마을
십 원 짜리 동전처럼 모여든 저녁 구름 아래로
둥글어 더 아늑한 집들과 뾰족해서 하얗게 각인된 무덤들
그래도 여전히 뛰어 노는 어린 아이의 탱탱한 맨발과
흙으로 빚은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쓸쓸한 연기
군불을 지펴 오목하게 따끈한 방 한가운데
소박하게 차려진 개다리소반
부르튼 한 손에 꼭 들어찰 만한 쓴 술잔 곁으로
아직 녹슬지 못한 수저 한 벌의 푸념

어제 누운 침상에 가까스로 와 험한 몸 뉘여도
이미 어제의 침상은 온데간데없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면의 화두

무궁무진 가식으로 만발하는 꿈이 차라리
팍팍한 현실보다 더 진정한 까닭은 대체 무어냐고
다 읽고 버려 둔 책장 다시 훌러덩 넘어가듯
핵심은 언제나 드높은 산맥과 산맥 사이로 줄줄이 내달음치고

어깨를 곁고 무리 지어 번성했던 고목들
지난 흉터의 질곡을 따라 어쩔 수 없이 굽었던 팔을 내질러
못마땅하게도 내내 부글거리는 혼탁한 수면 위로 쑥 뽑아 올려
결국 이리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까닭 없이 명멸해버린
즈믄 해
제 아픈 배꼽으로 마저 끌어와 꼭 안아 보지만
백팔 나한의 낯빛 모조리 다 읽고도
아직도 절 알아차리지 못한다며
끝내 푸른 전라로 오는 온 눈 매정하게 다 맞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