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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1998년 [시-박명자]쫓기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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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mloe
댓글 0건 조회 2,506회 작성일 05-03-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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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나무의 눈물을 보았다
윗마을 S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소문 함께
아름드리 고목 몇 그루가 쫓겨 나는 날
나무의 소리 없는 눈물을 보았다
메마른 들판에서 도깨비불 같이 반짝이는
나무의 눈물을 보았다

백년 넘도록 뿌리 내려 마을 수호신으로
어진 사람들 싸안아 다독거리던 푸른 그늘
실핏줄 사이사이 촌장어른 생신 날까지 각인된 옹이
마을 풍수까지 섬세히 그려진 나이테….

아름드리 나무가 쓰러지며 내지르는 굉음
천지가 진동하는 진노의 저음

그날 고목 가지에서 노래하던 새들도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져갔다

눈물을 남기고 나무들이 떠나간 이후
바람도 기웃거리다가 그냥 지나가고
새들도 다시는 둥지를 틀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