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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1998년 [시-박명자]눈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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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mloe
댓글 0건 조회 2,530회 작성일 05-03-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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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 도시에 눈이 내린다
유유히 내리는 눈은 끝도 없이 한 도 없이
내리고 또 내려 쌓이고 또 쌓인다

눈은 가장 깊은 곳 가장 맑은 곳을 가려
그의 흰 발을 내려 딛는다.
내린 눈은 바닥 모를 깊이로
시공을 덮어 씌운다

깊고 아득한 침묵의 소리 침묵의 빛깔
이 밤은 온통 눈의 차지
눈에 잠긴 도시는 머언 외연의 뜨락에 외따로 선다

누군가 스르르 다가와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것 같아
눈을 헤쳐 가면
어디든지. 누구나 한 마음으로 해후하는 빛깔

적막하고 깊은 밤에 눈이 내린다
산의 몇 만년 명상이 스르르 도시까지 내려와서
어깨를 기댄다

눈을 밟고 눈을 헤치고 어느 고독한 혼의 길목에
우뚝 서 보면 내 삶의 정점에 이를 것 같아
고요를 밟고 눈길을 계속 걷는다
천년 달빛같이 눈이 내리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