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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6년 [시-이선자]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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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32회 작성일 07-02-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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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역사(驛舍)를 지나
오후의 텅빈 광장을 가로지를 때
우리가 오래 이야기하던 것들을 잔뜩 묻힌 늙은 기차가
아직도 삶의 덜컹거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첨탑 위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앙 - 소리치며 달리고 있을 때
그것들의뒷덜미에돌나물처럼돋아있는생생한그리움이라든가
바로 어제 같은,
지우지 못한 기억들의 몸부림을 본다
남아 있는 추억은 어쩌면 오후 내내
오그라들지 못한 오징어처럼 축축하게 입안에 씹혀들 것이고
막 도착한 설은 고향에 이방인처럼 내려
기억의 어느 후미진 곳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초점을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 나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괴어 흐르는 침을 닦으며
우리를 주름지게 하는 것들의 무게만큼 짐을 들고
부화장 병아리처럼 허름한 길바닥에 쏟아져 나와서는
한 무리를 게워내고 또 떠나는 저 낡은 열차를
이렇게 오래도록 뒤돌아보며
돌아올 수 없는 석양에 에워싸인 채
그저 그리움과 싸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