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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6년 [시-장은선] 호수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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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86회 작성일 07-02-2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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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잿빛으로 물들어오면
수풀을 헤치고 호숫가로 들어간다
잔잔한 미풍에도 갈대숲 서걱거려
세파의 거친 숨결로 내쉬던
격음들이 파편으로 깨어져 내려도
시공을 뛰어넘어 열려있는 문
호수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항상심의 수위로 길 잃은 이를 너그러이 맞아준다
포르릉 물새들이 흙먼지를 털고
세속의 가감법을 버리고 노숙을 청하고
왜가리들 한없는 기다림으로
경전을 해독하는 선승처럼 먼 산을 응시하고
실잠자리들 부유하는 수초들을 오가며
흔적없는 가벼움으로 기포를 일으킨다
얼마쯤 숨을 더 내셔야
저들처럼 날아갈 듯 가벼워질 수 있는 걸까
몇 번의 물수제비를 날려 헛딧던 발자욱을 지우고
요동치던 허망의 방망이질도 멈추고
부단히 잠자는 듯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과 더불어
청동거울같은 수면에 마음을 비추어본다
마음이 멈추는 곳
그리하여 투명하게 깊이 바라보이는 곳이
가야할 집인 것이다
호수는 반사된 햇빛에 부서져내린
슬픔의 잔광들을 슬며시 바다로 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