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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6년 [시-김향숙] 대청봉 내려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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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24회 작성일 07-02-2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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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새벽
양양 오색에서 플래쉬를 켜들고 시작한 가을산행
열두 살짜리 늦동이 막내는
다람쥐처럼 오락가락 폴짝대며 날아다녔다

대청봉 정상에서 사진 찍고 점심 먹고
느긋하게 내려서는데
갑자기 무릎이 아파왔다
기암절벽 단풍천지가 눈귀에 아우성인데
굽이길 그늘엔 가끔
며칠 전 내린 때 이른 첫눈까지 미끄러웠다

천불동계곡 천당폭포 까마득한 철계단 아래
소공원으로 먼저 내려 보낸 아이의 모습이
등산객들 사이사이로 나폴나폴 사라져갔다

모든 사람들 다 앞질러 간 조용하고 어두운 길을
힘겨운 반걸음 반걸음
불 밝힌 남편을 따라 내려서던 비선대

‘나는 내려오는 게 더 쉽던데’
소공원 매표소 가로등 아래
반가운 아이의 얼굴이 단풍처럼 붉었다

내려오는 길이 올라가는 일 보다
더 어렵다는 걸
나이 쉰이 넘어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