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호2006년 [시-김향숙] 쌀가게 할머니
페이지 정보
본문
거진시장 뒷골목길 옛 쌀가게 할머니
여든이 훌쩍 넘어 가끔 치매증세가 있으시다는데
도로확장 계획에 묶여 오랫동안 비어 있는
가게 유리창에 자주 내 붙이시는 할머니체 글씨
‘가개 세 놋습니다’
바다 마르던 궁한기에는 등대 언덕배기 사람들에게까지 쌀이
나 국수 외상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다는 인심 좋고 기운 펄
펄 하시던 쌀가게 할머니
혼자 키운 아들이 늦은 나이에 읍사무소에 취직을 하면서 힘에
부쳐 가게 문을 닫으셨는데 동네에 대형슈퍼마켓들이 들어서면
서 재래시장도 기운을 잃어 뒷골목길은 사람들 발길이 뜸해져버
렸다
사람 그리운 할머니 북적이던 때를 못 잊으시고 세 들어 온 사
람들과 정 붙여 살아보시려는데 집이 헐릴 것이라는 말은 기억에
서 자꾸만 지워버리시는지 아니면 글씨 바꿔 쓰시는 일에 재미를
붙이셨는지
늦동이 손녀딸은 딱풀칠을 하고
나이 쉰이 넘은 아들은 유리창에 붙이고
할머니 손뼉 치며 아이처럼 즐거우시다
오늘은 분홍색 싸인펜으로 정성들여 쓰셨다
‘가개 세 놋습니다’
여든이 훌쩍 넘어 가끔 치매증세가 있으시다는데
도로확장 계획에 묶여 오랫동안 비어 있는
가게 유리창에 자주 내 붙이시는 할머니체 글씨
‘가개 세 놋습니다’
바다 마르던 궁한기에는 등대 언덕배기 사람들에게까지 쌀이
나 국수 외상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셨다는 인심 좋고 기운 펄
펄 하시던 쌀가게 할머니
혼자 키운 아들이 늦은 나이에 읍사무소에 취직을 하면서 힘에
부쳐 가게 문을 닫으셨는데 동네에 대형슈퍼마켓들이 들어서면
서 재래시장도 기운을 잃어 뒷골목길은 사람들 발길이 뜸해져버
렸다
사람 그리운 할머니 북적이던 때를 못 잊으시고 세 들어 온 사
람들과 정 붙여 살아보시려는데 집이 헐릴 것이라는 말은 기억에
서 자꾸만 지워버리시는지 아니면 글씨 바꿔 쓰시는 일에 재미를
붙이셨는지
늦동이 손녀딸은 딱풀칠을 하고
나이 쉰이 넘은 아들은 유리창에 붙이고
할머니 손뼉 치며 아이처럼 즐거우시다
오늘은 분홍색 싸인펜으로 정성들여 쓰셨다
‘가개 세 놋습니다’
- 이전글[시-김향숙] 오늘 그 사람을 보았다 07.02.27
- 다음글[시-김향숙] 풍선과 보름달 07.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