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6호2006년 [시-지영희] 백살 큰 외삼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50회 작성일 07-02-27 09:46

본문

  구십을 바라보는 어머니. 별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
면 슬그머니 꺼내는 이야기 큰외삼촌은 공부를 많이 했다
  가난했지만 다른 형제들에 뒤질세라 기를 쓰고 맏자식이라도
가르치려는 덕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떠나기 전날 친구와
불던 대금을 두고 두어 번 편지 후 소식이 없었다. 돈만 있으면
며칠이고 들어오시지 않던 외할아버지를 반듯하게 옷 한 벌 지어
입히시고 꼬깃꼬깃 모아둔 돈을 주소와 들려주시며 꼭 아들을 찾
아 데려오라고 한 외할머니

  그랬단다 주소로 찾아가 보니 약국이었단다 마침 자전거를 타
고 들어오는 아들을 문 앞에서 만났는데 그는 아버지를 인력거에
모시고 시내 구경을 한 바퀴 싹 시켜드리고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양자로 들어갔으니 걱정 말고 잘 계시라고 했단다 하룻밤
주무시지도 못하고 그 날로 끊어주는 배표를 들고 부산에 와서
가지고 간 돈 떨어질 때까지 지내다 오시고

  외할머니 애간장 다 녹아 우리 어머니 마음에까지 흘러 웃으며
이야기 듣는 우리들 사이로 잔잔히 흐른다 훗날 표 끊은 두 손을
얼마나 한했을까 두고 간 대금을 얼마나 아쉬워했을까 서늘하니
별빛이 엉기는 창가에 서성이며 그 옛날 즐겨 불던 가락을 수 만
번 구멍으로 흘려보냈을 외삼촌 지금쯤 어찌 지내실까 궁금해 하
는 우리를 보고 계실지도 모를 일 하도 들어 함께 산 것 같은, 별
빛 부러지는 구멍 난 백 살 큰외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