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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2006년 [테마시-최명선] 다시 미시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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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08회 작성일 07-02-27 11:26

본문

1)
새벽부터 시간은 질척거렸다
안개에 갇힌 오르막은
내내 숨이 가빴고
바다와 산 사이 은밀한 내통,
소외된 바람은 소리 몰고
골짜기 아래로 사라졌다

2)
기다림이란
얼마나 많은 구멍으로 이루어졌을까
문득, 늘어진 시간 속에 앉아
시위를 당겨본다
견고함보다 더 단단한 말랑한 것들의 힘,
과녁을 뚫지 못한 화두 몇 점 마음에 담고
눈을 감는다

3)
사이,
빛이 산란을 끝냈는지
바다 멀리 은빛 치어들
가시거리 속으로 속속 들어오고
늘어진 시간의 그물코를 당기던 사람들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안개를 털어낸다

4)
사라지는 것의 실상과
살아나는 것의 허상
생각은 생각을 낳아 사유의 골짜기 가득
안개를 피우는데
안개 벗은 영마루는 돌아앉아 아무런
말이 없다 혼돈,
처음부터 안개는 신기루가 아니었을까

5)
천천히 안개등을 끈다
내륙을 향해 내려가는 자동차의 두 눈
바다를 향해 올라오는 이마에다
깜빡깜빡 푸른 목례를 보낸다

위험스런 곡선이 빛나는 순간

미시령이 끝나는 지점에서
끝내 멀미를 하고 말았다
울컥,
쏟아 낸 환희는 눈부시게도
내 생애 가장 푸른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