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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수필-서미숙] k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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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36회 작성일 08-02-1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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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더운 여름 날.
선생님 계신 학교를 방문했었다.
언덕의 비탈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집들 틈새로 구부러진 길을
올라갔다.
멀리 바다가 보였다.
자갈들이 모여 있는 듯 하늘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너무나 높이 있어 겨울에 미끄러워 이 길을 어떻게 오르냐는 질문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가볍게 걷고 있는 선생님.
평소에 잘 걷지 않던 터라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에 내겐 무리였다.
나는 너무 힘이 들어 선생님 등 뒤에 대고 업어 달라 조르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고는‘힘드냐?’며 등 밀어주셨다.
다른 꼬마 녀석들도 이렇게 나처럼 업어 달라 조르며 이 학교를 졸업했
을 것이다.
지금 어디에선가 이 가파른 길을 기억하면서, 이 작은 학교를 아름답다
이야기 할 것이다.
모임이 끝나고 여러 선생님들과 어울려 학교 뒷동산을 통해 바다로 내
려가는 산책로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숲에 피어있는 노란 꽃이 너무 이뻤
다. 이름을 몰라 노오란 들국화라고 했더니,“ 이구! 서울 촌놈! 개망초야”
하고 후배가 이름을 알려주었다.
힘들게 내려오니 내 앞에 있던 앞 짱 바다, 이름도 재미있는 앞 짱 뒷
짱 바다. (마을 뒤에 있어‘뒷짱 바다’, 마을 앞에 있어 ’앞짱 바다‘라고
부른단다.) 그 모든 것들이 선생님 마음 같았다.
산책로를 내려오는 동안 졸졸졸 모임 부대가 선생님 뒤를 따르고 가파
른 언덕 넘어 질까봐 아이들 하나하나 손잡아 내려주시는 모습, 그거야 다
른 선생님들도 당연 하겠지만 내 눈에는 선생님이 특별하게 보인다. 다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늘 이야기 거리였으니 말이다.
언제가 수업을 마치고 우연히 우리 동네에서 선생님과 마주친 적이 있다.
반가웠다. 행사가 있어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신 모양이다.
행사가 끝나면 아이들과 같이 저녁을 먹을 것이니 같이 가자고 하셨다.
뻔했다. 아이들과 같이 가선 밥도 못 먹을 것 같고 이 많은 아이들을 선생님이
다스리시긴 벅찰 것 같다고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좋다고 승낙
을 하고 행사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선생님이 앉아 계신 자리로 많은 아이들이 와서
손잡고 여기저기서 반갑다고 끌어안고 볼 부비고 난리다. 아니 저 아이들
은 남자 여자 개념이 없나?
다른 남자 선생님들한테도 저럴 수 있을까? 난리가 났다. 등에 가만히
자기 얼굴을 기대고 있는 아이,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는 아이, 팔에 매달
려 있는 아이들, 심지어는 목마르다고 뭐 사먹고 싶다고 돈 달라고 하면
서 오백원, 천원 뺏어 가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선생님 온 몸이 고목나무에 나뭇가지가 더덕더덕 자란 것처럼 아이들의
사랑이 주렁주렁 선생님 몸엔 달려 있는가 보다. 어찌 저렇게 매달려 있을까?
힘들거나 지친 모습도 안 보인다.‘ 그래, 그래!’다 받아 주신다. 호랑이
선생님이라고들 하면서도 매달려 있는 아이들, 땀 냄새 가득한 아이들이
온 몸을 부벼대고, 얼굴을 만지고, 등에 와서 기대고 손을 만지작거려도
아무렇지 않게 보듬어 주시는 선생님께 물었다.
“아니 아이들이 왜 그렇게 안고 만지고 그러냐고? ”
“왜 질투 나니? ”
“아니 농담 말고요”.
선생님의 대답이 가슴 아팠다.
편모 편부에서 사는 아이들이라서 다 외로움에 찌들어 그런다고 하셨다.
사랑이 목마른 아이들이란다.
내가 처음 수업을 가던 날 낯설어 내 주위를 빙빙 돌던 아이들도 며칠
이 지나자 만지고 끌어안고 볼 비비고, 그래 그 아이들도 사랑이, 사람이
그리워서 일거라고 하셨다.
하긴 지금도 수업가면 우르르 아이들이 내 곁에 몰려온다. 졸졸 나를 따라
다니기도 한다. 겨우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로 갔다. 공부방 선생님들도
두 분이 계셨다.
자리가 없어 남들 예약해놓은 자리에 금방 먹고 가겠노라고 약속을 하
고 앉아 고기를 자른다.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가면 밑에 많은 후배들이
자리 마련해놓고 고기 다 잘라 수발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비새끼 같이 입 벌리고 있는 올망졸망한 녀석들 입에 고기 넣
어 주시느라 가위질 서투신 선생님 손이 바빠지신다.
나도 이렇게 배가 고픈데, 옆의 녀석이 눈치를 챘는지 상추쌈에 하나 가
득 싸서 입에 넣어준다. 선생님도 하나 싸다 드려 했더니 그 구정물이 주
르륵 흐르는 손으로 쌈하나 싸서 선생님 입에 넣어 드린다. 사실 난 아이
의 손을 보고 껄끄러워 망설였는데…
표정하나 안 변하시고 넙죽넙죽 받아먹는 선생님모습을 난 그냥 물끄
러미 바라만 봤다.
난 우리 아이 둘을 키우면서 수없이 학교 들락거리면서 학교 선생님들
과 많이도 싸웠었다.
공평성이 어떻고 권위주위가 어떻고 너무나 맞지 않는 학교를 다닌 우
리 아이.
만약 저런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지금쯤 그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렇게 세상과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30여명 아이들 수발드느라 저녁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정
신이 하나도 없다며 아이들 다 보내놓고 다시 먹자고 하시며 내심 미안한
기색을 보이셨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사실 배는 고팠다.
선생님도 배고프실 것 같았지만… 어차피 한번 놓은 숟가락 다시 들면
뭔 맛이 있을까 싶어
‘다음에 맛있는 거 사 주세요.’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이 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조금 전에 나눈 이야기가 머리속에 계
속 맴돌았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 행사 때마다 돈 쓰시면, 돈 버신 것 다 아이들한테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에 평생 나를 먹고살게 해주는 녀석들인
데 그 정도 쓰는 것은 어떠냐고 하신 그 말씀이 자꾸 뇌리를 스친다.
‘맞아 맞는 말이네.’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복 받은 거야.’그래서 누구든 선생님
이 일을 시키면 말없이 잘도 하고 도와줬나 보다. 선생님이 좀 귀찮고 힘
든 일을 부탁하면 다들 싫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선생님이 하시는 일
의 바탕에 항상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는 것을 보고 느끼기 때
문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분이기 때문이다.
가끔 난 물어 본다.
“이렇게 좋은 일 많이 하는데 선생님은 왜 상 못 타요?”
“임마! 나도 탈 거 다 탔다.”하신다.
이제 고만 선생님 놀려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