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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수필-서미숙] 구천 구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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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95회 작성일 08-02-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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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한 켤레 구천구백 원이다.
그 열 배를 더하고도 삼 만원을 더 한 숫자로 늘 사신 던 기억이 아물가물.
어느새 내 신발들은 명품딱지를 떼고 인터넷 홈쇼핑 딱지를 달고 있다.
여름 신발 겨울 신발 정리하면서...휴우 내던지는 내 한숨소리
명품딱지 쳐다보려니 한숨만 나온다.
옷도 그렇다.
지난 옷들은 다 작아서 입지도 못해 다시 장만하려니 힘겹다.
비싼 옷들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수선하려니 수선비도 만만치 않아
이래저래 옷장 속에서 썩고 있다.
구천 구백 원 인터넷 쇼핑 또 시작이다.
이걸 입어야 할 용기가 필요해 덥석 주섬주섬 입고 나를 감추고 간다.
딸아이 하는 말 엄마 제발 한 가지를 사더라도 비싼 거 사세요.
‘너 살아봐라 그게 되나? ’
많은 티켓들이 선물로 들어와도 한번을 사 신어 보지 못했다.
3개월이 멀다 하고 신발이 망가져 오는 남편을 위해 신발 사대기 바빴
다.
메이커 신발 한번 신어 보는 게 소원이던 어느 날 동생이 들고 온 구두
티켓을 주면서“제발 언니 이건 꼭 언니 사 신어”하길래 큰 맘 먹고 신
발 하나 샀다 정말 비쌌다.
그러나 아끼고, 애 키우면서 편한 신발 신고 다니다가 결국 못 신고 신
발장에서 놀고 있다.
어느 날부터 내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 있다.
값비싸고 맘에 드는 신발 하나 사놓으면 사춘기 겪는 딸아이가 어느새
몰래 신고 나가 다 망가트리고 온다.
옷도 그렇다. 드라이크리닝 해야 하는 옷을 입고 다니며 김치 국물 질
질 흘리고 여기저기 뜯기고… 아까워 입지 못했던 옷들 신발들 때문에 아
이와 늘 전쟁을 치뤘다.
다 친구들은 내가 아이들처럼 옷이랑 신발을 애들처럼 신고 다녀서 그
런다고 했다.
생각한 끝에 반짝이 종류 옷을 사 입었다. 그리고 싸구려 신발만 샀다.
그랬더니 전쟁이 끝났다.
그렇게 시작한 인터넷쇼핑 구천 구백 원 맛이 괜찮다.
어떤 것은 정말 잘못 사서 버리는 것도 있다.
언제가 신문을 보니 93년 서울 창동에 이마트가 처음 선보인 뒤 96년
정부가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대형 할인점 뿐 아니라 인터넷쇼핑몰
과 홈쇼핑의 등장 10년이 막 지났을 뿐인데 인터넷쇼핑몰인 G마켓도 올
해 매출 4조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에 선보인 지 불과 3년밖에
안되었는데도 미국에서 30년이 걸리던 일이 국내에서는 10년 만에 이뤄지
다 보니 나처럼 홈쇼핑 인구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예전에는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물건들을 사곤
했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길거리 쇼핑하면서 이 만 원짜리 구두를
사들고 와 횡재를 한 양 들떠 좋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럴 거도 없다.
너무도 편리하고 척척 배달해 주는 홈쇼핑이 있으니 말이다. 이로 인해
서민경제의 한 축인 재래시장이 속속들이 문을 닫아 심각한 경제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시대에 따라 적응하는 변모가 필요했기에 나도 그 계
열에 끼어 안방에 앉아서 쇼핑하는 시대를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가끔은 난 재래시장을 찾는다.
하루 종일 발이 아파도 옛날 내가 다닌 던 그런 재래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지고 사라졌지만 그 추억들을 되새기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아오
고 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요즘은 언론이나 지역에서 쇠퇴해가는 재래시장의 기능을 어떻게 하면
회복하고 활성화할 수 있을까, 고심을 하고 있다.
지난 2004년엔‘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경영혁신과
시설 현대화에도 나서고 있다.
나도 그 고심에 한몫을 해야지 하며 가끔 재래시장을 찾지만 역시 편리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대형마트와 비교해 볼 때 검은 봉지, 봉지에 물건들을 다 담아 들고 다
니다 보면 어깨 빠지게 아프다. 그러나 대형마트를 가면 편리한 카트에 물
건 다 실어 아이 쇼핑하면서 즐길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다.
과연 우리 아이들도 대형마트에 가는 것보다 재래시장을 가려 할까 싶다.
점점 편리화 되는 시대 사람의 마음도 편리화로 변화되어지고 있다.
옛날 어른들의 살림들을 다 보면 정말 기막힌 기술이며 생활이다.
예를 들면 수저를 하나 사용해도 은수저를 사용하면 음식의 독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어 은수저를 썼던 지혜가 있다.
내게도 우스운 에피소드가 있다.
옛것들을 좋아해 한동안 은수저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이 자주 술을 먹고 들어와 계속 그러면 국에 술 못 먹는 약을 타서
먹일 거라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며칠 지나 계란찜을 했다.
계란찜은 은수저로 푸면 은수저가 시커멓게 변해버린다.
그날도 술을 잔뜩 먹고 와 술 해장엔 계란찜이 좋다고 해 계란찜을 해서
밥상에 올려놓았다.
남편이 계란찜에 수저를 넣는 순간 색이 까맣게 면
했다. 그러자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술이 다 깨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그 전날 농담한 소리에 기겁을 하던 그 모습.
어서 먹으라고 원래 그렇다고 해도 수저로 계란을 먹지 못했었다.
그렇게 공부를 잘했다며 계란 안에 있는 황이 은수저의 은과 화학반응
을 일으켜 검게 되는 것도 모르냐고‘죄지은 게 많아 왜?’하고 소리를 질
렀던 기억이 난다 .
나중에서야 남편도‘그렇지’하고 먹고는 둘이 낄낄거리며 웃었지만 순
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리는 것 같이 정말 놀랬단다.
지금은 은수저를 매번 갈고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은수저는 안
쓴지 오래다.
음식문화도 얼마나 많은 인스턴트로 바뀌어 가고 있는가?
나도 이 시대에 부응해 가면서 오늘도 홈쇼핑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적응이라고 합리화를 시켜가며 아이와의 전쟁을
핑계 삼아 구천 구백 원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