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7호2007년 [수필-서미숙] 빈자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38회 작성일 08-02-19 14:50

본문

어디냐 ?
도착하려면 멀었는데도 어머니는 십 분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하신다.
시집오고 처음 친정을 간다.
명절엔 강원도 시댁으로 가기 때문에 한 사 흘 전에 가서 명절을 쇠고
서울로 돌아오면 평일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 보니 이번 나들이가 처음 친
정에서 명절을 맞는 셈이다.
제법 쌀쌀한 초저녁이다. 엄마는 진작부터 나와 기다리셨나 보다.
코끝이 빨갛다“. 아구 내 새끼 왔냐?”와락 나를 안으시며 우신다.
“얼마나 고생이 많냐?”내가 할 소리인데 그 몇 개월을 엄만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가 무섭다고 여러 딸 네 집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달을
보내시고 맞는 첫 추석이다.
그동안 설움에 목이 메이시는지 날 안고 펑펑 우셨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그 자리가 크긴 컸나
보다.
“왜 그렇게 멀리 나왔어요? 힘들게”“뭐가 힘드냐? 내 새끼 보러 나왔
는데”
현관문을 여니 거실 바닥엔 온통 부침과 제사음식거리다. 허리가 아파
서 서서 못하겠다고 하더니 바닥에 자리를 깔고서 음식을 하신 모양이다.
좀 더 일찍 와서 도울 걸. 나도 시아버지 제사가 있어 그것 다 준비 해놓고
음식이 혹여 쉴까 단속하고 오느라 오후가 다되어서야 친정에 도착했다.
이것저것 간 보라며 내 입에 넣어 주신다.
“배고프지? 어서 밥 먹자.”
“엄마 이젠 제가할게요.”“다했다, 다했어.”음식도 이미 다 해놓고 마무
리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동생들은 하나도 안 왔다. 딸 다섯 하나같이 장손, 외동에게 시집을 가
서 음식 준비하기 바쁘다. 그나마 난 막내에게 시집을 가서 다행이다 싶
었는데 시숙이 돌아 가셔서 제사를 내가 갖고 왔다. 그렇다 보니 딸 다섯
다 제사를 지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생전에 아들 ,아들 하셨나보다. 내 제사는 누가 지내
주나 그런 걱정을 했던 것 같다 미리 알고 말이다.
다 치우고 오랜만에 서울 하늘을 보았다. 잿빛 하늘 내 고향이다.
초가을인데도 바람이 매섭다. 추운 버스 안에서 떨어서 인지 아직도 귀
가 시리고 발목이 시큰거린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몸살 기운이 있나보다.
옥돌전기매트를 고온에 틀어 놓고 잠을 청했다.
아이들이 궁금할 텐데 집에 전화를 걸어야지 하고 생각 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침이 되니 어제 그 쌀쌀하던 기운이 사라지고 해놓은 음식이 쉴까 걱정이
될 정도로 따뜻했다.
첫 명절제사를 맞는다. 늘 아버지께서는 제사상 앞에서 내게 일러주셨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枾) 왜 그렇게 내게 제수 진설 법
을 알려주셨나?
아무도 없는 텅 빈방 아버지 사진을 올려놓고 차례를 드렸다.
술 한 잔 따르고 절 두 번 밥 한술 뜨고 다시 수저 놓고 그 때는 다 외
울 것만 같았는데 막상 하려하니 어렵다. 남동생이 살아있었음 하는 생각
도 들었다.
엄마가 울음보를 터트리고 마셨다. 뭐 그리 서럽다고 저렇게 우시는지
나도 눈물이 나왔다.
두 모녀가 앉아서 울고 있다. 아버지 사진만 보고 두 모녀는 엉엉 울었다.
몇 kg이 빠지신 것 같은 엄마 그래도 그 아버지의 잔소리가 나았나보다
혼자 이 텅 빈집에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또 눈물이 나왔다
엄만 참 손재주가 좋으셨다. 쓱쓱 가위로 오려 만들면 상보가 예쁘게 만들어 졌다.
몇 번 바느질이면 예쁜 테이블보와 커텐, 그리고 반바지 도시락 보 리
본 등등… 그러나 어느 날부터 엄만 바느질에 손떼고 마셨다. 여자가 바
느질 좋아하면 박복하게 산다고 외할머니가 야단 하셔서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천상 여자이셨던 엄마, 연두색 빨간색 바둑무늬로 엮인 상보로 곱게 밥
상 차려 덮어놓고, 아버지 밥은 사발에 꾹꾹 눌러 아랫목에 묻어 두고 아
버지 마중 나갔던 어린 시절
어느 날인가 고무대야에 가득 깻잎 다듬으시던 엄마, ‘이거 언제 다해요?
’하고 물으면“눈은 너무 게을러서 저걸 언제하나 하면 부지런한 손
이 후딱 일을 해버린단다.”
그러니 너도 어서 해봐라 하시면 정말 그 많던 깻잎이 다 정리가 되었다.
평소에 깻잎 장아찌를 많이 담갔다. 식구들이 좋아해서 그 맛난 깻잎을
간장에 폭 담가 돌로 꾸욱 눌러 놓아 장독에 묻어두고 먹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려고 하면“ 잠이란 열흘을 자봐라 열흘 동안 그 참 잠맛을
알아서 더 깊은 잠에 빠진다. 잠이란 끝이 없단다.”
“조금 졸립다. 싶을 때 깨어서 일어나야 한다”고 하시던 어머니
오늘 보니 늙어버린 할머니 모습이 역력했다.
제 2의 김지미라고 소문이 날 만큼 미인 이셨던 아름다운 미모도 이제
다 사라졌다.
꾸부정한 허리도 제대로 못 펴시고 관절이 심해 뼈 주사로 다리 힘을
버티시는 어머니어서 내가 모셔야 하는데 오히려 나를 걱정하시는 어머
니, 불효막심한 생각이 든다.
명절이라고 도와 드리지도 못하고 사흘 동안 난 아파서 죽도록 이불 속에서
앓다만 왔다.
저녁때쯤 몰려온 동생들과 제부들로 집안에 활기가 돌았지만 이렇게 엄마를
혼자 두고가야만 하는 내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성격 자체가 누구랑 같이
살기 싫어하셨다.
그래도 항상 나랑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날이 언제일까?
우리가 어렵다고 내 집에도 오시지도 않는 어머니 그래도 오라 하시면
“너 잘 살면 가마 ”
그때가 벌써 몇 년인지 이러다 덜컥 아버지 곁으로 가시는 것은 아닌지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나 보면 아직은 어두운 밤인데 언제 내게도 새 날은
있으려나?
오늘도 꿈꾸며 산다.
어머니의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드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