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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수필-이은자] 옛 동산에 올라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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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124회 작성일 08-02-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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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나는 1950년대 초, 옛 속초의 부둣가, 중앙시장이 된 연못, 북
청도청 길로 이어진 철교와 습지, 그리고 e편한세상APT가 들어선 구릉
과 공설운동장 둘레에 비탈진 곳을 걸었습니다.
오늘 나는 다시 옛길을 더듬어 나섰습니다.
꿈속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던 속초의 옛 모습이 그리운 것은 말할 나위 없지만,
이 시점에서 내가 다시금 그 지명을 찾아 도는 뜻은 그 시절
철부지 나와는 달리, 전쟁으로 인한 위험과 가난과 절망으로 살고 간 내
부모와 그리운 사람들을 그려서입니다.
오늘은 읍사무소(시청청사)마당, 우체국, 청초호반을 따라 부월리 밤부
득고개까지 걸어가겠습니다.
나는 열 살, 속초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내 아버지는 15사단(사변 중 물치리에서 창설) 문관입니다. 아버지는
구질구질한 피난민 생활을 벗어나 옛(협성)실업고교 동창생들이 손짓하는
서울로 가족들을 챙겨 떠나려 하던 그 때에 돌연 군속이 된 것입니다.
‘지금은 돈 버는 일 보다는 국군을 도와, 북진하여 고향에 돌아가는 길이
도리에 맞는다’면서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아버지 부대 15사단은 최 일선
대진 전장이라서 며칠 만에 잠깐씩 집에 다녀가십니다. ‘곧 휴전이 될 것
같다’하시며 엄마와 침울한 표정이 되십니다.
휴전이란 전쟁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하자는 약속이랍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얼마를 기다려야 고향으로 돌아갈지 몰라서 부모님들이 낙심하지
만, 나는 빨리 휴전 조약이 맺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다칠 염려
없이 집에 자주 오고, 국군아저씨들이 부상당하고 죽는 일이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과 중∙고 학생들이 머리에 띠 두르고 손에 태극기며
피켓을 들고 읍사무소 마당에 구름처럼 몰려들어 궐기대회를 가집니다.
‘휴전 결사반대’‘북진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읍사무소 넓은 마당엔 7월 뜨거운 햇볕을 흰 천막으로 빼곡히 가리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우체국 건물은‘이동 외과병원’이 되었습니다.
흰 천막들은 응급실이고 입원실입니다.
부상당한 국군 아저씨들은 밤 낮 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병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위생병과 간호병들 손도 너무 모자라서 우리네 엄마와 언니
들이 매일같이 도우러 갑니다. 울부짖는 부상자들, 죽은 듯 기진해버린 부
상병들에게 물을 길어다 먹이고, 피 묻은 붕대를 빨래해서 다시 감아 놓
고, 음식을 만들고......
그 무렵, 밤이면 사람들은 부둣가 근처 동산(속초관광호텔 근방)에 올
라 북쪽 하늘에서 수없이 오고가는 불꽃을 구경합니다. 영화에서 본 그런
불꽃놀이처럼 보입니다. 눈앞에서 전쟁을 볼 수 있는 건, 휴전 호루라기가
막 울리는 그 시각까지 한 뼘의 땅이라도, 무엇보다 금강산을 서로 차지
하려고 남과 북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부상병이
갑자기 더 많아진 것입니다. 페니시링 주사를 놓는 의무병은 손에 쥐가 나서
더는 못한다고 합니다. 전장에선 숨이 붙어있던 사람이 이 이동외과병
원 천막 안에서 숨을 거두는 일이 많은 것은 미쳐 손을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갈제 우체국(병원)앞을 지날 것이 큰 걱정입니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 갑니다. 담력 있는 오빠야가 앞장서고 우리는 눈을
꼭 감고 서로서로 옷자락을 틀어 쥔 다음 여럿이 한꺼번에‘엄마야--- 오
금아 날 살려---’뛰어 갑니다.
우체국 현관 양옆 화단자리엔 꽃은 없고 잘라낸 팔, 다리가 그득 얽혀
져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밤새 수술하여 자른 국군아저씨들의 것입니다.
어제까지 뙤약볕 흰 천막 안에서“살려 줘어, 물- 물”하던 아저씨들 몸입
니다. 그 팔로 우리 보고 내어젖는 것 같고 그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어떤 손은 파르르 떨며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쌍다리를 건넜습니다.
소야천은 큰물이라 아이들은 함부로 건널 수 없습니다. 청대리 앞 넓은
버덩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흐르다가 청초호에 몸을 풀어 놓습니다.
청초호는 술단지모양으로 생겼습니다. 부둣가에서 6구까지는 보급소(최전
방 병참기지)가 있습니다. 군인들의 보급소인데 민간인들도 거기에 기대
고 살아갑니다. 그 나머지는 풀과 꽃과 갈대숲이어서 온갖 새들의 차지입니다.
어느 날 해질녘이었습니다.
열댓 명 아저씨들이 새벽에 쳐둔 그물을 당기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재미삼아 함께 그 줄을 잡아당깁니다. 숭어, 붕어 말고도 내가 미쳐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고기가 많이 퍼덕거립니다. 한 아저씨가 나를
지목해 부르더니“아버지 갖다 드려라”하시며 칡 끈으로 아가미를 꿴 고
기 두 마리를 내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뱀처럼 긴, 피난시절 부산 다대포에서
처음보고 소름 쳤던 그‘뚱쟁이(뱀장어)’입니다.
그것이 지기 몸을 비비꼬며 틀고 기어올라 내 팔둑에, 손등에 닿을 때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땅에 태질을 쳤다가 도로 집어들고 집에까지 간신히
갔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생선이 그것입니다.
청초 호반을 따라 걷노라면 대포로 나가는 길 오른편에 부월리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7번국도 쪽)엔 아름드리 소나무 밭이 있습니다. 평탄
하고 동해의 아침햇살이 제일 먼저 비추이는 마을이지만 사람들은 무척
어둡게 살고 있습니다. 국군 특수부대가 이 마을을 꽁꽁 묶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마을에 드나드는데 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가 봅니다.
그 마을에 있는 개척교회로 우리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축하 예배를 함
께 드리러 갈라치면 인솔자 누구(교회대표), 교사 누구누구 그리고 아이
들 몇 명을 미리 신고했고, 모든 행사를 정한 시간 안에 마치고 돌아 올
때에도 역시 점검 받았습니다.
부월리에서 발길을 돌려 5구(청호동) 쪽으로 꺾어집니다. 갯배 물목 아니면
오구로 가는 길은 청초호를 한 바퀴 빙 돌아가는 외통길이 있습니다.
바닷가 풀밭(사구)은 온통 공동묘지고 모래사장 따라 밤부득고개에 이르면,
밤 낮 없이 매케한 냄새를 피우는 연기가 뭉글뭉글 오르는 큰 구덩이가 있습니다.
우체국 현관 밖에 쌓아 놓았던 사람 몸 조각들을 병원에서
나오는 피 묻은 물건들과 뭉뚱그려 이곳에서 태웁니다. 사람들은 밤부득
고개를 지나가기를 무서워합니다. 그곳에는 대낮에도 도깨비가 나오고 귀신도
나온다는 소문이 떠돌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기서 해가 집니다. 하루해는 경우에 따라서는 짧기만 합니다.
5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설 속 풍광과도 같았던 속초를 전쟁의 참화와
겹쳐서야 회상이 가능하다니. 살아온 나날들이 미안코 감사 할 뿐 이다.
천혜의 자연 속초에 사는 복을 후손에게 고이 물려 줄 사명이 우리 모두
에게 있음을 잊지 말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