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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수필-이은자] 우산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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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3,068회 작성일 08-02-1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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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날씨는 중앙기상대 예보와는 상관없을 때가 많다. 이 고장 사람들
은 빗나가는 예보에 대해 도시 사람들처럼 과민반응을 않는다. 으레 그러려니.
휀 현상이란 기상학적 이론은 몰라도, 설악산과 동해바다 수평선에 낀
구름을 봐서 농사건 뱃길을 결정짓곤 한다.
여우비 오는 날이면 초등학교 교문 앞엔 우산마중 온 부모들이 여럿 보
인다. 예기치 못 한 비가 온다고 어느 아이나 저렇게 우산마중을 받는 건
아닐 것이다. 전에 비해 더 많은 엄마들이 일(職)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도 막내를 키울 적에 늘 우산마중을 못 하는 엄마였다. 제 나름대로
자존심 있는 꼬마였는데, 남의 엄마 우산 속에 편승해 오자니 그 마음이
오죽 서럽고 야속했으랴. 그 맘으로 언제 퇴근해 올는지도 모르는 아빠를
자기가 우산마중 나간다고 우기곤 했다.
지금은 자가용 승용차나 핸드폰이 있어, 쉽게 그 일을 하겠지만, 옛날
모든 게 원시적일 때가 유익한 구석도 있었다. 마음을 얻고 싶은 애인에
게 우산마중이 소원을 이루는 길이 될 수 있었고, 다투고 출근한 남편의
마음을 녹이는 몸짓일 수 있었으니까.
우산마중 하면 따라서 연상되는‘나홀로 집에’는 역시 아팠던 추억이다.
막내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나홀로 집에’있은 날이 많았다. 서울 정릉
3동은 북한산 자락에 맑은 개울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많은 동리다. 우
리 집은 한옥이 잇대어 있는 골목 막다른 집이다. 대문 앞 작은 공간은 또래들이
놀기에 알맞은 장소다. 동무들이 다 가고 혼자 남으면 나무대문에
빗장을 떨거덕 잠그고 마당에 있는 동무들과 소꿉놀이를 한다. 제 몸집만
한 진돗개‘빠삐’와 자그마한 발발이‘뽀삐’그리고 제비새끼들이다.
그 시절 해마다 봄이면 우리 집 추녀 안에는 제비가 새끼를 너 댓마리
씩 키우곤 했다. 새끼가 깨어나면 어미는 둥지 바깥 줄이나 턱에서 지낸
다. 웬만큼 무서운 날씨에도 쉬지 않고 먹이를 물어 나른다. 새끼들은 눈
을 감고서도 제 어미 오는 것을 알아채고 입을 벌려 찌익찌익 소리 지른
다. 어미는 고루고루 먹인다. 새끼 제비는 몸 전체가 입 뿐인 것 같다. 가
을이 되서 강남으로 떠날 채비를 차릴 때까지 둥지 바깥에 포르르 포르르
날기 연습을 한다. 그제서야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 소리도 제격으로 야무지다.
어느 여름 날의 일이다. 멀쩡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한 밤
중처럼 캄캄해 지더니 마침내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 닥쳤다.
전등이 연신 깜박였다.
그 때 걸려온 전화.
“엄마, 제비네 엄마는 집에 왔어 지금.”엄마는 안 오냐?는 말을 아이는
그렇게 하고있다. 일(직장) 가는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막상 속상한 것은
어쩌지 못해, 굴뚝 뒤에 가서 울고 나오던 꼬마다. “응 현아 알았다 엄마
도 금방 갈게.”“근데 엄마 뽀삐만 마루에 들어오게 해도 돼지?”“너 많이
무섭구나.”“아니— 뽀삐가 무서운가봐 자기 집 안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
만 봐 눈이 똥그래.”“그래라 뽀삐 발 잘 닥아서 들여놔라.”
나는 내 아이를 달래 놓고 호야네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그 애도 맞벌
이 가정의 막내라서 아파트 열쇠를 목에 걸고‘나홀로 집에’다. “호야 무
섭지? 현이 아줌마다.”“아니요 아빠가 곧 온대요.”잔뜩 겁에 질린 녀석
의 목소리가 전해온다.
새끼 때문에 가슴 조리고 아프던 세월은 가고, 현이도 호야도 건강한 청년으로
잘 자라주었다. 고마운 세월이다. 지금도 일터에서 마음 설레는 어
미들은 여전하리라. 하지만 부모자식간의 밀착된 거리만이 반듯이 옳은
양육법이 아닐 것이다. 좋은 육아(育兒)가 시공(時空)의 간격에 국한되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 가시적(可視的) 한계를 너머서는 신뢰, 애정, 수고야
말로 더 확실한 육아의 길이 아닐까 한다.
지금 나는 매일이라도 우산마중 갈 수 있는데, 기다리던 아이는 우산마
중이 소용없다. 오히려 내게 우산이고자 애쓴다. 좀 지나면 이 에미가 부
르던 노래를 그도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가고… (중략)
아가는 쌔근쌔근 자고 있는데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동요.섬집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