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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정명숙] 나무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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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35회 작성일 08-02-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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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이 수상하다.
폐휴지 수거함에 넣으려고
구석에 쌓아놓았던
책들이 움직이고 있다.
경계의 눈빛으로 관망하는데
어느 시인의 말씀 가슴을 때린다.
- 시인이 시집을 한 번 내려면
나무가 몇 그루나 필요한지 아십니까? -
오백 권 이상 내는 것이 통례니까
다섯 그루, 열 그루……
나무를 베어가며 셈을 해본다.
- 아름드리나무 열다섯 그루가 필요합니다. -
놀라워라, 아름드리나무 열다섯 그루라
창고 속에 갇혀있던 낡은 책들 기지개를 켜고
베란다 구석으로 밀려난 책장 속 책들 뛰어나온다.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순간, 책들이 나무가 된다.
모두 허리 굵은 통나무
수맥을 찾기엔 여긴 너무 높은가
뿌리 내리고 싶은 나무들 울고 있다.
내 시집 한 권 갖고 싶다는 꿈은
푸른 나이테 안을 맴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