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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신민걸] 자꾸 잊고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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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89회 작성일 08-02-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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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나고 꽃 피더니 꽃잎 버리고 열매 버린다
아버지는 또 날 낳으시고 자꾸 돌아가셨다
돌아보면 집집마다 사람들이 들어 산다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고 텔레비전을 본다
걸음마를 배우며 생긴 아이의 흉터도 희미하다
벽에 가득했던 낙서도 함께 들었던 음악도
이사가는 차가 그 모두를 싣고 남기지 않는다
집을 팔고 간다지만 실은 집 말고 기억이 간다
이웃도 버리고 친구도 친구의 이름도 버린다
첫사랑도 첫사랑의 짠한 기억도 흐리멍덩하다
누구는 제 얼굴도 잃고 오랜 이름도 잊는다
누구는 제 나온 학교도 잊고 믿음도 잃는다
멸종 위기에 닥쳐서 스승은 할 말이 없다
새삼 공부는 자꾸 잊고 잃는 일의 습관화다
그래서 가을은 영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다
평생 시를 쓰고자 결심한 이유마저도 버렸다
내가 죽어도 시는 남길 바라지만 큰 오산이다
모두 잊고 잃는 일에 열중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시 잊을 즈음해서 잎 내고 꽃 피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