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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장은선] 운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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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43회 작성일 08-02-1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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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에 구부러진 운탄길이 있지
그전에 갱도에서 김이 나는 석탄을 실어나르던 길
제무시가 숨을 헐떡거리며 돌아가던 길을
승용차가 카지노로 골프장으로 싱싱 달리네
갱도로 향하는 탄차에서 단비처럼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사막을 건너는 등굽은 낙타의 꿈을 꾸었지
탄가루가 모래바람처럼 무릎을 꺾던
사북의 막장에서 탄부들이
삭지않은 슬픔을 탁주와 돼지껍데기로 삼키던 길
들꽃같이 담배연기를 허공에 날리며
가족들의 얼굴을 보름달처럼 떠올리던 먼 귀가길
길에 새겨져 갈라터진 삶의 잎맥마저도
검은 탄가루가 흔적없이 지워버렸던가
갱도에 갇혀진 오래된 기억들이
차디찬 겨울판화로 부식되어 검은길이라 불린다네
캄캄한 어둠은 어둠이 아니라
봉숭아 꽃잎처럼 곱게 싸맨 상처가 아픔을 밀어내는 길
여기에도 오일장 틈틈이 비는 쏟아져
검은 얼굴 씻고씻은 습지가 되어
화사한 산죽나무,산철쭉이 얼룩점처럼 피어난다
때로는 구부러진 길이 꽃을 피운다